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차승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중세사학회 서양중세사연구 서양중세사연구 제53호
발행연도
2024.3
수록면
159 - 199 (4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3세기 중반에 리모주 부백령을 다스렸던 기 6세와 그의 부인 마르그리트는 플랜태저넷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군주 및 제후들의 지원을 얻고자 노력했다.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기 6세는 부르고뉴 공작 위그 4세의 딸 마르그리트와 재혼했으며 마르그리트는 브르타뉴 공작 장 1세의 장손을 사위로 맞아들임으로써 군사·경제적 지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기 6세는 플랜태저넷 가문에 적대적이었던 카스티야왕 알폰소 10세와 동맹을 맺는데 성공했다. 특히 두 사람은 프랑스왕의 보호를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기 6세의 첫 번째 부인은 필리프 2세와 루이 9세의 신임을 받던 인물의 딸이었으며 마르그리트는 루이 9세와 자녀들의 결혼을 약속하는 혼인협정을 체결했다. 한편 1259년에 체결된 파리 조약을 통해 리무쟁 지배권을 획득한 헨리 3세는 복종을 거부하는 기 6세와 마르그리트를 굴복시키기 위해 이들과 대립 중이던 귀족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으며 특히 부백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원하던 리모주 시민들과 동맹을 맺고 군사 원조를 제공했다. 이에 루이 9세는 헨리 3세와의 전면적인 대립을 피하기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리모주 부백령을 막내아들에게 영지로 제공하려던 계획이 리모주 시민들의 거부로 인해 무산되자 마르그리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274년 필리프 3세가 마르그리트의 리모주 소유권을 인정하고 에드워드 1세의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리모주 부백 가문은 플랜태저넷 가문을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