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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덕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사단법인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한국문학과 예술 한국문학과예술 제48집
발행연도
2023.12
수록면
145 - 190 (46page)
DOI
10.21208/kla.2023.12.48.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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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삼국유사』 권제2 기이제2 처용랑 망해사조의 분석과 그 원전, 鄕樂大面의 處容舞로의 變容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처용랑 망해사조에 전하는 처용설화에 울산을 가리키는 고려시대의 지명이 보이지 않은 사실을 통해 처용설화와 관련된 기록의 기본원전은 신라 말기에 찬술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처용가와 처용무는 신라말기에 제작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국어학계에서 처용랑 망해사조에 전하는 처용가 가사는 고려시대의 향찰 표기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一然은 고려인이 일부 글자 등을 改書하여찬술한 어떤전승자료에전하는 처용설화를 『三國遺事』에 인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驅儺舞의 성격을 지닌 處容舞를 처음 제작한 헌강왕대에 또 다른 구나무인 大面이란 舞樂이 공연되고 있었다. 이것은 중국의 대면과 西域에서 전래된 蘇莫遮등의 영향을 받아 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대면이 일본에 전래된 蘭陵王은 一名龍王이라 불렀고, 그가 면위에 날개를 펴고 나는 용을 얹어놓은 점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난릉왕과 그와 관련된 故事를 각색하여 沒日還午樂과 이것의 기원설화를 새로 만들었음이 확인된다. 한편, 신라의 대면이 일본에 전래되어 高麗樂納蘇利로 정립되었다. 납소리는 연희자가 가면을 쓰고 북채를 들고 용 한 마리 또는 두 마리가 노는 모습을 형용한 무악이다. 일본인이 중국의 대면과 그와 관련된 故事를 각색하여 沒日還午樂과 이것의 기원 설화를 새로 만들었듯이 신라인도 대면을 변용한 또 다른 구나무로서 처용무를 제작한 다음, 그것의 창작배경이 되는 설화를 새로 만들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상정해볼 수 있다. 게다가 처용이 용왕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처용무의 연희자가 착용한 가면의 모습은 용의 형용을 본뜬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중국과 신라에서 전래된 난릉왕과 납소리가 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다는 사실 역시 신라인이 대면을 변용하여 처용무를 제작하였음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로서 제시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처용랑 망해사조의 분석과 원전
3. 鄕樂 大面의 處容舞로의 변용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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