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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규수 (히토쓰바대학 한국학연구센터)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85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49 - 18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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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그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김가진을 제국 일본의 언론매체와 관헌 자료를 통해 재조명하고자 한다. 일본이 김가진을 어떤 존재로 인식했는지, 즉 그를 조선 침략을 위한 ‘포섭 대상’으로 인식했는지, 아니면 ‘불령선인’으로 인식했는지 조명한다. 고종의 측근으로서 일본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시기, 대한제국의 대신으로서 개혁을 추진하던 시기, 망국을 전후한 좌절과 침묵의 시기, 그리고 3․1운동 이후 상하이 망명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시기로 구분하여, 김가진의 활약상을 살펴보았다. 김가진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명문가 출신의 친일 관료로서 그는 제국과 식민지를 넘나들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국가와 민족의 현실에 눈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어 조국의 독립을 되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그는 조선의 자주독립을 대변한 ‘일본통’ 외교관이었다. 국제적 감각을 겸비한 김가진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선이 독립국임을 강조했다. 외교관으로서 일본 정계의 주요 인사들과 마주하면서 조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그는 의욕적으로 갑오개혁(甲午改革, 1894)과 광무개혁(光武改革, 1897)에도 관여했다. 러일전쟁의 결과 조선이 일본의 실질적인 식민지로 전락하자, 김가진은 을사늑약 체결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김가진은 각지의 의병 세력과 협력하는 형태로 일본의 침략을 경계했다. 3․1운동을 계기로 김가진은 독립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3․1운동 당시 김가진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할 계획을 세웠으나, 관헌 당국에 사전에 발각되어 일시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는 대동단 총재가 되어 국외로 탈출했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동 거점을 상하이로 옮겼다. 김가진은 대동단 조직을 배경으로 상하이를 무대로 한 운동의 가능성을 가늠했다. 일본 관헌은 김가진=대동단의 ‘두령’, 대동단=대한민국임시정부의 ‘별동대’로 파악했다. 나중에 김가진은 일본과의 혈전을 주장했고, 이를 위한 군자금 모집과 조선 내 지부 설립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는 무단파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조직을 이끌었다. 김가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조선 귀족에서 독립운동의 ‘거괴(巨魁)’로 자신을 변모시킨 독립운동 세력의 ‘큰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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