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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수정 (강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40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123 - 163 (41page)
DOI
10.31218/TRKH.2020.12.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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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창궁주 유씨는 고려 원종의 왕비이다. 고려시대 후비들을 부르는 명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비에 있던 경우는 ○○왕후로 기록되고 있다. 이에 경창궁주는 그 명칭으로 볼 때, 원종의 여러 후비 중 하나일 것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경창궁주는 후에 서인으로 강등되기까지 하였다. 왕비의 지위에 있던 여성이 서인으로 강등되었으니 극적인 삶을 살았기에 흥미를 가지고, 궁주의 가문 배경과 혼인, 왕실에서의 지위, 강등되는 과정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경창궁주 유씨는 종실녀로 왕씨 성을 지녔다. 아버지는 종실 왕전이고 어머니는 희종의 딸 가순공주이다. 이 가계는 문종의 아우 평양공 왕기에서 시작되는데, 대대로 왕실과 혼인하면서 종실의 지위를 지속한 가계이다. 왕씨 성을 지녔지만, 동성혼을 피하기 위해 유씨 성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실녀는 고려 역대 왕들의 제1비가 되는 경우가 다수인데, 경창궁주는 원종의 후처로 결혼하여 일반적인 종실녀의 혼인과 다름을 보인다.
경창궁주 유씨는 원종과의 결혼으로, 고종대는 태자비, 원종대는 왕비, 충렬왕대는 태비의 지위에 있었다. 태자비 시절에는 왕실에 왕비나 왕태후가 존재하지 않아 최고의 지위에 있었다. 왕비가 되어서도 왕실 여성으로는 최고의 지위에 있었지만, 역경도 만나게 되며 평탄하게 지내지는 못하였다.
남편 원종이 죽은 후, 전비인 순경태후 김씨 소생의 충렬왕이 즉위하면서 그녀는 왕의 친모가 아니므로 태비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충렬왕과 태자 책봉 문제로 갈등이 있기도 했기에 우대 받지 못하였다. 또한 충렬왕비인 원 제국공주의 위상이 높아, 태비로서 왕실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중 무고로 인해 친아들을 왕위에 올리고자 한다는 이유로 마침내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아들마저 귀양 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왕비의 지위에 있었지만, 경창궁주로 기록되어 그 위상이나 역할에 맞는 시호를 갖지는 못하였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경창궁주의 가계와 혼인
Ⅱ. 태자비, 왕비로서의 경창궁주
Ⅲ. 태비에서 서인으로 강등된 경창궁주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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