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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남희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제84집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369 - 407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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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정순왕후 김씨의 언교와 언간을 통한 정치적 지향성과 생활세계에 주목하고 있다. 그녀는 15세 때 영조의 계비가 된 이후 궁중정치 속에서 살았다. 정조 대에는 왕대비, 이어 순조 대에는 대왕대비로서 왕실의 웃어른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수렴청정 시기에 스스로 여군, 여주라 칭하기도 했다.
영조 대에 언문 전교를 내리기도 했던 그녀는, 정조와 순조 대에도 언교를 내리고 있다. 전체 42건의 언교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역대 왕후들 중에서 제일 많다. 또한 정조대와 순조대 수렴청정 시기에 쓴 언간 중 일부(15건)가 현재 전해진다. 주로 조카 김노서와 주고받은 것이다.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언교와는 달리 언간은 기본적으로 사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정치적 성격을 지닌 사적인 언간도 있으며, 여기서는 그들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 일차 자료로서의 언교와 언간을 통해서 정순왕후의 생활세계를 정치적 지향성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정순왕후의 정치적 자원과 위상은 영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영조의 뜻을 받든다는 것을 언제나 분명하게 내세웠다. 혜경궁 풍산홍씨 가문과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오빠 김귀주가 죽은 이후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순조의 즉위와 더불어 수렴청정하면서 정순왕후가 보여준 모습은 정치적 명분이나 정파의 이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조 대의 왕권강화 정치에서 순조 대의 세도정치로 이행하는 전환기의 정국에서 중요한 하나의 지점이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주목해야할 것이다.

목차

요약문
Ⅰ. 머리말
Ⅱ. 정순왕후와 경주김씨 가문
Ⅲ. 정순왕후의 언교와 언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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