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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철웅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86호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111 - 13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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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경령전에 대한 연구 성과가 여러 편 나와 있다. 그러나 연구 성과 간에 다소의 이견도 있어 이를 검토해 보았다. 먼저 경령전이 西上制인지, 아니면 昭穆制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검토 결과 경령전은 서상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송 때까지 태묘를 비롯한 사당 제도는 서상제였으며, 고려 태묘도 서상제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왕과 왕비의 합사 문제에 대해 검토하였다. 고려사 「후비」전과 예지에는 경령전에 왕비가 합사된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경령전을 경기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경기전 감실보다 경령전 각 실의 예단이 더 작다. 따라서 경령전의 각 실에는 태조와 역대 왕의 어진만 봉안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경령전은 송의 경령궁을 본 따 조성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경령궁은 도관으로 창건되었으며, 선대 황제의 어용을 처음으로 봉안하기 시작한 것은 천성 2년(1024) 즉, 고려 현종 15년이었다. 고려의 경령전은 태조의 신어전으로 건립되었으며, 현종 9년 이전에 이미 태조의 어용전이 있었다. 선대 군주의 신어전이라는 성격은 경령궁보다 고려의 성용전이 먼저 등장하였다. 송은 국초부터 어용전을 운용하였고, 이는 이전의 당과 동시대의 요도 마찬가지로 어용전이 있었다. 송의 경령궁은 남북조시대, 당 이래의 어용전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고려의 경령전도 이전 시대부터 존재했던 어용 숭배를 계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령전이 경령궁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보기 보다는 동아시아에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화상 숭배의 전통을 수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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