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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진현경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50권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143 - 17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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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元代 四川行省 平章이었던 낭기야다이(囊加台)의 世系와 정치적 활동을 통하여 元代 중후기 제위계승 분쟁 속 四川 일대의 동향에 대해 분석하였다. 致和 원년(1328) 泰定帝가 상도에서 사망한 후, 元의 두 수도인 上都와 大都에서는 최고 통치권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이 발발하였다. 소위 양도내전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전국 대부분의 행성이 참여하여 자신의 입장에 따라 향배를 달리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런데 四川行省은 양도내전이 한창일 무렵에는 미온적 반응을 보이다가 上都의 패배가 확정시 될 무렵 군사를 일으켜 大都의 文宗 톡테무르 정권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四川의 동향은 곧 平章 낭기야다이의 입장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낭기야다이 가문은 대몽골국 시기부터 군사적 성과를 바탕으로 사천 지역에 대대로 진수하였다. 사천 일대에서 오랜 활동으로 인해 이들 가문의 영향력은 사천뿐 아니라 섬서·운남·토번 등 인접 지역에도 미쳤다. 특히 낭기야다이의 숙부였던 예수데르(也速迭兒) 시기부터 그의 가문은 운남 일대까지 광범위한 군사 활동을 벌였고 이는 낭기야다이가 사천행성 평장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낭기야다이는 양도내전 발발 당시 大都와 上都 어느 측에게도 직접적으로 군사적 지지를 보내지 않다가 上都 측이 패배하자 군사를 일으켰다. 본고에서는 검토를 통해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았다. 낭기야다이는 대칸위 경쟁자 중 어느 한 쪽을 적극 지지할 정도의 친소관계가 없었을뿐더러, 인접한 행성이 모두 향배를 달리하였기에 섣불리 나서기보다는 자기 보전을 위해 양도내전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사태를 관망하였다. 그러나 낭기야다이는 이전에 운남에서 군사적 활동을 계기로 上都 측 주요 인물인 雲南王 옹샨(王禪)과 정치적 관계를 맺었던 점에서 대도의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내전 발발 이전 옹샨 및 그의 아들은 이미 북상하여 운남에 부재하였고 낭기야다이 역시 上都를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나, 文宗 톡 테무르는 옹샨과 관계 및 그가 가진 막강한 군사력을 견제하여 양도내전 중 낭기야다이를 제거하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大都 측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낭기야다이는 톡 테무르의 즉위 조서를 기반으로 明宗 코실라를 추대하였다. 그는 정치적 정당성을 내세워 文宗 톡 테무르 정권에 반기를 들어 자신의 입장을 유리하게 바꾸고자 시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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