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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소현숙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백제연구 제77호
발행연도
2023.2
수록면
23 - 4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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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백제 무왕이 익산에 건립한 제석사 목탑에『金剛經』을 납입했다는『觀世音應驗記』의 기록을 실마리로, 6세기 후반 중국『金剛經』신앙의 백제 유입과 제석사의 성격 등을 고찰하였다. 『금강경』은 반야계 경전으로, 5세기 초 처음 한역되었다. 5세기 말 ~ 6세기 전기에 이르면,『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수명을 연장한다는‘『금강경』신앙’이 남조의 승단을 중심으로 유포되었다.『금강경』신앙은 6세기 말에 이르러 민간으로 널리 확산되었으며, 당대에 이르러 관련 영험기가 찬술될 정도로 매우 성행했다.『금강경』독송과 抄寫의 공덕도 범위가 확장되어, 지옥 등 冥界 및 현실 諸難으로부터의 구제 등 생사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 수당대의 황권은 이와 같은『금강경』신앙을 통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6세기 말 ~ 7세기 초 제석사가 창건되던 즈음은 중국에서『금강경』신앙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중국의『금강경』신앙은 6세기 말경 백제로 유입되었으며, 이를 주도했던 것은 반야경을 중시하는 三論學을 배우고 중국으로부터 귀국한 백제 삼론학 승려였을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는 그 대표적 인물이『大乘四論玄義記』의 撰者이자 무왕대 僧正이던 慧均이며, 그가 제석사 창건 및『金剛經』의 납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제석사는 왕실사찰이었으므로『金剛經』의 납입에는 무왕의 의지도 강하게 개입했다고 봐야 한다. 對隋交流를 통해 무왕은 隋 文帝가 통치에『금강경』을 이용했던 사례를 숙지하고,『금강경』신앙의 정치적 역할을 기대하며 제석사에 『금강경』을 납입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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