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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정미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저널정보
한국일어일문학회 일어일문학연구 일어일문학연구 제125권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181 - 202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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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엔략쿠지 고코쿠엔기』『히에산노리쇼키』에 나타난 히요시 신앙의 변용에 착목하여 히요시 신의 양상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먼저 『엔략쿠지 고코쿠엔기』의 히에이 산 개벽 당시 덴교대사(伝教大師, 最澄)가 히요시 신과 대면하는 장면에서 히요시 신은 모든 사람을 구제하는 부처의 수적(垂迹)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자비의 신으로서의 신위(神格)를 나타낸다. 그 방법으로 『엔략쿠지 고코쿠엔기』는 『비화경(悲華経)』과 『열반경(涅槃経)』을 인용함으로써 실제적인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는 히요시 신의 신위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엔략쿠지 고코쿠엔기』는 히요시 신이 자신에의 '제사'와 '경신(敬信)'에 대해서는 백성들의 평안과 국토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며, '불제(不祭)'와 '불신'에 대해서는 지벌을 내리는 신이라고 설파하는데, 이는 『니혼쇼키(日本書紀)』에 등장하는 오모노누시 신(大物主神)의 연장선상에서 형성된 신격(神格)일 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냄으로써 '오곡(五穀)'과 같은 현세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서의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엔략쿠지 고코쿠엔기』는 오모노누시 신이 '我朝主(우리나라 신의 우두머리)'라고 불린 이유에 대해 본래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吾朝主'였고, 그 지배권을 오모노누시 신에게 양보한 결과라고 이야기하며, 스사노오노 미코토→오모노누시 신→히요시 신이라는 구조를 이루며 '我朝主'로서의 신격을 밝히고 있다. 『히에산노리쇼키』에서 히요시 신은 선승(禅僧)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인신(現人神)으로서의 신격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엔랴쿠지의 승려를 공양한다는 조건부이긴 하지만, 질병 치유의 신으로서의 신격을 나타낸다. 특히 히요시는 공양을 미뤄야 하는 이유를 미리 알려줌으로써, 부정(穢れ)을 탄 사람이 겪는 곤란을 지켜주고 중생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방편(方便)의 신으로서 '자비구족(慈悲具足)'의 신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히에산노리쇼키』에는 후지와라노 모로미치(藤原師通)의 죽음이 히요시 산노신앙과 관련된 이야기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의 강력한 히요시 신앙을 말해주는 동시에 지벌의 신으로서 히요시 신의 신위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간슌 승도(桓舜僧都) 설화에서 히요시 신은 현세의 이익보다 후세의 왕생을 가장 먼저 기원하는 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다른 문예 텍스트에서는 볼 수 없는 히요시 신의 양상으로, 장르의 차이는 있지만『엔략쿠지 고코쿠엔기』에는 모든 사람을 구제하는 신으로서의 신위가, 『히에산노리쇼키』에는 후세의 왕생을 가장 먼저 기원하는 신위가 기술되어 있다. 이는 일본의 제신(諸神) 중에서 히요시 신만이 본지(本地)가 석가불(釈迦仏)이라는 언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히에이 산의 지주신(地主神)이었던 히요시 신이,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라는 본지수적(本地垂迹) 사상의 전성기와 더불어 이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에 의해 신격・신위에서 다양한 변용을 이루어 간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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