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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용우 (동덕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사학회 서양사론 서양사론 제156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13 - 153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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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독일강점기 프랑스에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최악의 전쟁범죄인 오라두 학살에 대해 그 원인과 전후(戰後)의 재판 및 그 재판이프랑스 역사와 집단적 기억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중심으로고찰한 것이다. 오라두 학살은 1944년 6월 10일 독일 무장친위대의다스라이히 사단 부대가 중서부 프랑스 리무쟁 지역의 오라두쉬르글란(약칭 오라두)에서 643명의 주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오라두 자체에는 레지스탕스 대원이 전혀 없었고 인근에도 항독유격대가 없었지만 독일군은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 6월 6 일 시작) 나흘 뒤, 항독 투쟁이 활발했던 리무쟁 지역의 주민과 레지스탕스 세력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고 항독 의지를 꺾기 위해 그러한학살을 자행했다. 오라두 학살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은 8년 반 뒤에 가서야 보르도에서 열렸는데 법정에 학살 책임자인 장교들은 전혀 나오지 않았고 21 명의 피고인 중에 프랑스인이 오히려 독일인보다 두 배나 많았으며프랑스 피고인들 14명 중에 13명은 알자스 출신의 강제징집병이었다. 재판 과정 내내 자기 지역의 강제징집병들이 법정에 선 것에 분개한알자스 지역 주민들과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 분노한 리무쟁 지역 주민들이 충돌했다. 이는 독일강점기에 대한 두 지역의 상이한 두 기억의 충돌이기도 했다. 재판이 한창 진행중일 때 법(1948 년 9월 15일 법)이 바뀌기도 했고, 결국 판결이 내려지고 불과 1주일뒤에 사면법이 통과되어 13명의 알자스인들은 곧바로 석방되었다. 이는 프랑스 정부와 의회가 ‘국민통합’과 ‘국익’의 이름으로 알자스의기억을 선택한 결과였다. 그러한 선택에는 알자스 지역이 리무쟁 지역보다 인구가 많고 부유하다는 사실, 그리고 두 지역의 정치적 성향차이가 크게 작용했다. 아울러 1950년대 초의 프랑스는 당시 좌파가선호한 항독의 과거와 강점기에 대한 기억보다 우파가 선호한 용서와 화합, 이를 위한 망각과 사면이 더 우세한 시대였다는 점도 그러한 선택적 국민통합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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