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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기경량 (가톨릭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76輯
발행연도
2023.7
수록면
95 - 12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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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위치한 안학궁 유적은 고구려의 왕궁터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본 학계에서는 출토된 유물들의 성격을 근거로 고려시대의 유적으로 보는 견해가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였다. 한국 학계에서는 여전히 고구려 유적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최근에는 고려시대 유적으로 이해하는 견해들이 생겨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안학궁 유적의 성벽과 건축군의 배치에 대해 분석하여 안학궁 유적의 축조 시기를 검토하였다. 안학궁 유적 성벽은 기단부에 石列을 배치한 토성이다. 이러한 유형의 토성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주로 축조되었다. 개성의 고려 왕성과 강화도의 고려 외성 역시 같은 유형으로 축조되었다. 따라서 안학궁 유적의 성벽은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안학궁 유적의 건물 배치에 대해서는 과거 위진남북조시대의 東西堂制와 상통한다는 견해가 제시된 바 있으며, 이는 안학궁 유적을 고구려의 것으로 이해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발굴된 북위 낙양성의 태극전 동당 유적을 참조하면, 안학궁 유적의 중심 건물 형태는 동서당제와 차이가 있다. 오히려 주목되는 것은 안학궁 유적 중심 건물의 배치가 오대십국시대 개봉성 황궁의 건물 배치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는 나말여초 시기에 해당하므로, 고려 초에 사신 파견을 통해 파악한 중국 황궁의 형태가 안학궁 조영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고려 초에는 1개의 정전과 2개의 편전이 운용되었다. 따라서 안학궁 남궁의 중심 건축물은 정전, 그 좌우에 배치된 건축물은 편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궁 뒤에 자리한 중궁의 중심 건축물은 침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안학궁 유적 성벽의 축조 방식
Ⅲ. 안학궁 유적 건축군의 형태와 배치
Ⅳ. 고려 왕궁 유적과의 비교를 통한 안학궁 유적 건축군의 성격 검토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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