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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기경량 (가톨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09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59 - 192 (34page)
DOI
10.37331/JKAH.2023.3.10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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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문에는 영락 10년 경자년(서기 400)에 고구려가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임나가라’ 지역에 군대를 보내어 활동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왜군에 의해 위기에 빠진 신라를 구원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광개토왕비문에 보이는 신라의 위기 상황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왜군의 공격은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지만, 대규모 병력이었다고 보이지는 않으며, 신라가 존망을 걱정할 수준이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400년에 있었던 전쟁의 본질은 낙동강 하류 지역을 둘러싼 신라와 금관가야의 대결이었다. 금관가야는 우호 관계에 있는 왜의 병력을 활용하여 신라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신라는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고구려의 개입을 기획하였다. 신라는 고구려에 왜의 실력과 위협 수준을 과장하여 호소하는 한편, 왜가 고구려와 대적하고 있는 백제와 연계된 세력임을 강조하였다. 고구려 원정군을 앞세운 신라는 자국 영역을 침범한 왜군을 몰아내는 한편 이들의 뒤를 추격하며, ‘임나가라(금관가야)’를 공격하였다. 그 결과 금관가야는 큰 타격을 입어 세력이 위축되었고, 낙동강 동안 일대는 신라의 영향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고구려의 400년 원정에 가야의 여러 소국이 어떠한 식으로 대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제시된 바 있다. 특히 ‘安羅人戍兵’이라는 비문의 문구와 관련해 함안의 안라국이 어떤 입장이었는지에 대해 이견이 많다. 그러나 400년 전쟁에서 실제 전투가 전개된 지역은 금관가야의 영내로 한정되었다고 여겨지며, 금관가야를 제외한 다른 가야의 소국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관망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금관가야가 신라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영향력을 상실하자, 그 공백을 틈타 함안의 안라국과 고령의 대가야가 가야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고구려의 400년 원정은 가야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전쟁의 규모와 실제 영향력에 비해 과도하게 평가되었던 측면도 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신라 영역 내 倭軍의 실상
III. 전쟁의 성격과 참여 세력의 목적
IV. ‘安羅人戍兵’ 문제와 가야 제국의 대응
V.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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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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