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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노상균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26권 제1호
발행연도
2023.5
수록면
35 - 64 (30page)
DOI
10.17068/lhc.2023.05.26.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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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초기까지 여주는 지역경제의 중심지로서 일정수준 상업이 발달한 곳이면서도 식민지배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와 일본 상인의 유입에 따른 압박은 상대적으로 덜하였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1926년 경남철도가 확장되어 안성-여주 노선이 생기고 1932년 수원 -여주를 잇는 수려선이 개통되는 등 철도 교통망에 포섭됨에 따라 여주와 여주 상인들도 마침내 본격적인 변화와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철도개통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와 외부자본의 유입에 대응하기 위해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 무렵 동안 여주지역 내에서 각종 사회, 경제단체들의 신설 및 재건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여주에서 설립된 주요 상공업단체로는 여주상사조합, 여주흥산조합, 여주주조조합 등이 존재하였는데 이들 단체들은 주도층들이 서로 거의 겹치지 않으며 경제적 기반에도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곧 여주상사조합은 대개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왔던 대지주 및 유력상인들이 주축이 되었던 반면에 여주흥산조합 및 여주주조조합은 대부분 토지 소유가 없는 관료 및 지식인 출신으로 새롭게 상공업에 뛰어든 인물들이 주축이 된 단체였다. 이처럼 여주의 상인 및 유지들이 따로 단체를 설립하고 각기 활동한 것은 철도개통 이후 여주지역의 새로운 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른 영향이 계층별, 자본별로 달랐고 그에 따라 지역 발전의 방향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여주 지역민 내부의 입장 차는 1933년에서 1934년에 걸친 여주읍내장 이전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표면화되었다. 1933년 주내면 당국의 여주읍내장 이전 계획에 대해서 외래자본의 유입을 경계하고 지역 내 조선 상권 유지에 민감했던 기존 시장상인들은 격렬히 반대한 반면, 철도개통을 기회로 여기고 일본의 각종 시설이 여주에 들어오는 것에 긍정하며 외래자본의 유입을 경계하기보다 조선 상인들의 경영방법을 더욱 개량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보았던 유지들은 시장 이전에도 환영의 뜻을 표하였다. 여주읍내장 이전을 둘러싼 갈등은 외래자본 유입에 따른 대응 및 여주지역의 발전 방향을 두고 여주의 상인 내부의 계층별․자본별 입장 차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처럼 여주상인들이 분열된 가운데 식민권력의 개발 정책에서 여주 상인들이 소외되는 일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조선도기주식회사의 설립에서 볼 수 있듯이 당국의 정책에 따른 여주 지역개발의 이익에서 여주 상인들은 소외되었고 그 이득은 외부의 일본인 및 조선인 대자본가들에게 돌아갔다. 일제시기 여주 경제는 외형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식민지 지역개발의 혜택은 온전히 지역민들의 것은 아니었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여주 상업의 발전 과정과 지역적 특징
3. 식민지 지역개발에 대한 여주 상인의 대응과 갈등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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