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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정화 (경상국립대학교)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81호
발행연도
2024.8
수록면
159 - 18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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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는 근대 전환기의 지식인 恒齋 李翊九(1838-1912)가 1890년 入鄕하여 지금까지 세거하는 驪州李氏 집성촌이다. 퇴로리 여주이씨 문중은 밀양 단장면 무릉리에서 3백 년 동안 세거하였고, 이익구는 그의 아우 靜存軒 李能九(1846-1897)·庸齋 李命九(1852-1925)와 함께 퇴로리로 옮겨와 살면서 각각 一家를 이루었다. 이들 삼형제는 性齋 許傳(1797-1886)의 문하에서 星湖 李瀷(1681-1763)의 近畿實學을 배웠다. 그들의 개방적 사고는 전통 교육에만 얽매이지 않고, 마을에 華山義塾을 설립해 신학문과 측량기술 등을 가르치도록 했다. 이렇듯 전통적 의식과 근대적 신문물을 아울러 수렴하는 그들의 정신과 학문은 다음 세대인 省軒 李炳憙(1859-1938)와 退修齋 李炳鯤(1882-1948) 등에게로 계승되었다. 밀양 퇴로리에는 이들 삼형제의 고건축, 곧 이익구의 西皐精舍, 이능구의 龍峴精舍, 막내 이명구의 三隱亭이 현재도 남아서 전통마을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중 용현정사는 이능구가 세상을 떠나고 12년 후인 1909년, 두 아들이 아버지가 즐겨 찾던 곳에 세웠다. 따라서 심성수양에 힘썼던 이능구의 뜻과 부모를 숭상하는 자식의 효심이 더해진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퇴로리 고건축의 핵심은 이익구가 만년에 지은 서고정사와 이명구의 삼은정이다. 먼저 이익구는 서고정사 영역을 크게 ‘정당(正堂)-후원-마당-주변’ 등 4개 구역으로 나누고, 핵심 공간에 모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추구하려는 뜻을 전체 17수 한시로 읊었다. 과거 선현들은 건물의 실제 크기나 용도보다 ‘이름’을 통해 공간적 의미를 표출하였다. 이익구도 서고정사와 퇴로리 전체를 아우르는 17개 이름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自適과 求道의 뜻을 담아내었다. ‘세 가지에 숨는다’는 뜻을 지닌 삼은정은 ‘물고기 잡고[漁], 땔감하고[樵], 술 마시는[酒]’ 세 가지로, 은거와 자적의 삶을 추구한 이명구의 정신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물론 현실을 외면하는 은거가 아니라, 심성을 수양하고 義를 돌아보는 물러남을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요컨대 밀양 퇴로리 고건축은 삼형제 사후 아들과 손자 대에 이르도록 여주이씨가를 대표하는 장소로 활용되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면서 시대변화를 받아들여, 현재는 경남지역 동부권역을 대표하는 근대한옥으로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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