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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형진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39호
발행연도
2016.6
수록면
83 - 118 (1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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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이 창도된 이후 이를 적극적으로 탄압하던 유림층에서는 차츰 동학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특별히 영남지방에서 두드러졌다. 영남 유림의 양반층은 심지어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혁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물론 지도자가 되어서 동학농민군을 이끌기 까지 했다. 왜 초기에 그렇게 탄압에 앞장섰던 유림세력이 동학에 밀착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동학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당시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과 많은 부분에서 합치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동학은 당시 유학의 대세를 이루고 있었던 위정척사론과 흡사한 논리에 동감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성리학이 가지는 명백한 신분적 한계 내지는 탁상공론에 머무는 학문관 등에 회의적이었던 지식층이 이에 적극 호응하였을 것이다. 특히 벼슬길에서 멀어진 이른바 몰락한 영남 양반층에게는 민중들과 똑같은 인식으로 접근되었을 것이다. 구미 선산지역은 예부터 인재가 많이 나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도 이 지역의 많은 인재들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동학의 지도부가 이 지역에 왔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이웃인 김천 지역에는 해월 최시형이 몇 차례 방문한 기록이 있다. 특히 김천의 복호동에서 발표한 내칙과 내수도문은 동학의 생명 존중 사상을 대표하는 경전이 되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해월 최시형이 구미 선산지역을 방문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기록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구미 선산지역이 동학기록에 나타나는 최초의 것은 1893년 보은집회 때 였다. 당시 경상도 지역의 많은 포가 참여하는 가운데 구미 선산지역의 많은 동학도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보은 집회에서는 경상도 지역을 담당할 포로 6개 포가 임명되었다. 그 중에서 구미 선산지역을 담당할 포는 충경포와 선산포였다. 구미 선산지역의 동학도들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될 당시 충경포의 편보언과 선산포의 신두문 그리고 많은 양반 출신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은 김천읍을 점령한 뒤 선산읍성을 점령하였고 일본군 병참기지가 있는 해평을 습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이를 감지한 일본군의 선제 공격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미 선산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꺼지지 않는 들불이 되어 지금도 이 지역을 밝히는 정신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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