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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규태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49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7 - 4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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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강원도 원주지역의 동학 전파와 원주 출신 동학인의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연구이다. 먼저 최제우와 최시형이 교주로 활동하던 시기, 강원도 원주 출신 인물의 동학 수용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리고 동학농민운동기 원주 출신 동학인의 강릉·홍천 등 강원도에서의 동학농민운동과 그 성격에 대해서 알아보고, 충청도에서 벌인 활동에 대해 검토하였다. 강원도 원주인으로 처음 동학을 수용한 사람은 장기서였다. 그는 1860년대후반 영월에 유배 와 왔던 이경화를 통하여 동학에 입교하였다. 그리고 1871 년 ‘이필제의 난’ 이후 최시형 등 동학 지도부의 인물들이 강원도에 피난을 와서 경전을 간행하고 포교를 확대하자, 원주지역에도 점차 동학이 확산되었다. 1890년대 초 강원도 원주에는 임순호, 이원팔, 이화경, 신택우, 김화보, 이규하, 이종태, 임명화, 임석화 등이 교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강원도 원주의 동학인들은 1894년 음력 8월 20일 경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에 항거하며 봉기하여 음력 9월 4일 강릉부 관아를 점령하고 제2차 동학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부의 동학인들은 최시형, 손병희와 함께 충청도 우금치 등지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였다. 동학농민운동 후 원주의 동학인들은 최시형과 손병희 등 동학 지도부의 인사들이 원주에 와서 은거하며 포교활동을하는 것을 도왔다. 1898년 최시형의 사망 후 원주이 동학인들은 대체로 손병희를 지지하였다. 그리고 1904년 원주의 동학인들은 진보회를 설립하고 소위 갑진개화운동을전개하였다. 1904년 소위 갑진개화운동 시 원주의 동학인들은 진보회를 설립하고 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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