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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윤정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05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85 - 11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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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13세기 양국의 정치ㆍ 군사적 현안, 홍차구의 활동, 동북의 정세와 행정구획 변화와 관련해 동녕부의 치폐 배경을 살펴보았다. 13세기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한 몽골이라는 강력한 대상을 맞이하여 무신 집정자, 고려 왕실, 북계의 백성들은 각각 자신들의 입장과 이해 관계를 근거로 대응하였다. 동녕부의 설치는 당초 쿠빌라이가 ‘장래’에 六事와 출률환도의 이행을 전제로 원종에게 약속했던 “完復舊疆”을 파기한 결과였다. 대일 원정에 대한 소극적 자세와 六事의 철저한 이행을 미루는 원종에 대해 몽골은 결국 1269년 원종폐립사건을 계기로 비록 고려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위에서 청혼은 허락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려 북계인들의 투항을 받아들여 동녕부를 설치하고 이 과정에서 요동의 고려인 세력, 홍씨와 왕씨가 고려로 진입하게 되었다. 원 조정의 고려에 대한 “分治”와 “권세가 서로 같아 저절로 통제되는(使權侔勢等)”방침은 곧 고려 분계 영토의 분할과 홍차구로 대표되는 요동의 정치세력과 고려 국왕의 알력과 경쟁으로 나타났다. 1278년 친조에서 충렬왕은 이전과는 달리 쿠빌라이가 추진하는 대외원정에 적극적인 참여를 표시하여 장래의 功勳을 약속하게 되었다. 쿠빌라이 시기 중대한 정치적 사건인 나얀의 난은 중앙권력과 동도제왕, 요양행성, 고려 내의 권력관계의 변화와 재편을 가져온 중요한 계기이다. 나얀의 난을 수습하고 동북지역에 최고지방행정기구인 요양행성이 정식으로 성립되면서 고려왕과 충성 경쟁을 벌이던 홍차구 일가가 행성의 재집에 임명됨으로써 요동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쿠빌라이는 동녕부를 폐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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