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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재영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시민인문학 제41호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9 - 3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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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10년대 『少年』?『靑春』에 나타난 최남선의 초기 산악 인식에대한 연구이다. 이 글의 분석대상은 『少年』의 7편과 『靑春』의 5편, 총 12편의글이다. 1910년대 『少年』, 『靑春』에서 최남선의 산악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면다음과 같다. 최남선은 『少年』의 ‘太白’에서 백두산을 단군의 탄강지- 민족의 ‘表象’으로 보았고, 壇君을 ‘배달, 祖山’에 기초하여 유사에서부터 이해하여 檀에서 壇으로 표기 변경하였으며, 산을 조선 역사의 ‘요람이자 포태’로 판단하여 산악의 역사와조선의 역사를 동일시하여 인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초기근대문학 및 문화· 청년담론과 고적조사보존사업 및 ‘조선’ 지역의 재영토화가 활발하였던 시대적특성과 역사적 변화 속에서 심상지리를 통한 국토애와 자기표상의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최남선의 초기산악인식은 민족의 자기정체성 구현의 일환이었음을알 수 있었다. 1910년대 산에 관한 글은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이르는 산악저서의바탕을 이루어, 산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며 민족의 상징을 넘어문화의 원류로 이해하는 연원이 되었다. 최남선의 1910년대 초기 산악인식이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이어지는 그의 산악 인식의 기저가 된 흐름과 조선 표상으로서의 山, 산악인식의 원형이 시대적 맥락 속에서 형상화된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1910년대 『少年』, 『靑春』에서 보여주는 초기산악인식은 이후 최남선의조선의 민족적 표상을 형성하는데 토대가 되었으며, 산에 대한 총체적이고집중적인 기록들은 근대지식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고 담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최남선의 1910년대 산악인식은 1920년대에서 1940년대에 발간된 『풍악기유』,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그리고 『천산유기』, 『조선의 산수』로 이어지는 산악관련 저서에 조선 산악 인식의 전반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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