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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주성 (전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56호
발행연도
2017.2
수록면
349 - 365 (1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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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8일만에 항복을 하게 된다. 그 8일 동안의 뜨거웠고 긴박한 상황 전개를 살펴 본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백제의 멸망은 그 뒤 백강전투로 대표되는 왜의 패배와 고구려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꼼꼼하게 살펴볼 이유가 있다. 660년 6월 20일에 덕적도에 도착한 당군은 신라의 김법민과 7월 10일 합군을 약속하였다. 당군이 20여 일 정도 백제의 공격을 늦추고 있었던 것은 신라군이 돌아갈 시간을 확보해주고 동시에 위력시위를 통하여 백제가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항복하기를 바랐던 까닭이었다. 이 전략은 상당히 효율적인 전략으로, 실제로 백제는 허둥지둥하다가 백강과 탄현을 방어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7월 9일 나당군은 협공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격해 들어왔으며, 당군은 백강을 거슬러 올라와 상륙을 시도했다. 당군은 금강을 거슬러 강안에 진을 치고 있던 백제군 수천 명을 사살하고 수륙으로 병진하였으며, 황산벌전투에서는 계백이 효과적으로 방어전을 펼쳐, 신라군의 진격을 늦추었다. 이때 당군은 일부가 웅포 부근으로 상륙하였으며, 상륙한 부대는 육로로, 나머지 배에 탄 부대는 강경으로 상륙하여 강경 부근의 논산 성동리일대에 집결하여 신라군과 합군하였다고 보았다. 7월 11일 만난 나당군은 7월 12일 사비도성으로 4개의 공격로를 통하여 진격하였다. 4개의 공격로를 편성한 것은 사비도성의 방어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4개의 방어진에서 백제가 온 국력을 기울여 방어하였다. 이 전투는 7월 12일과 13일에 걸쳐 이틀간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 결과 백제의 나성은 무너지게 되었고, 백제는 죽은 자와 포로로 잡힌 자가 만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의자왕은 나성이 함락되자, 7월 13일 밤 전세가 기울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웅진성으로 피신하였다. 이후 웅진성에서 예씨 일가의 쿠데타로 의자왕은 포로로 잡혀 나당군에게 넘겨졌다. 이렇게 백제는 허무하게 무너지는 듯 했으나, 곧 이어 부흥군이 거세게 일어나 나당군과 부흥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백제 지도부가 미증유의 국가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재구성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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