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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위가야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38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37 - 57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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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가야와 백제에서 바라본 각자와의 접경이라는 관점에서 문헌 기록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전북 동부지역 정치체의 성격을 검토하였다. 이는 5~6세기 한국고대사의 시공간에서 전북 동부지역이 가지는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 글에서 검토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본서기』에서 백제와 가야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곳으로 전하는 기문은 논쟁이 있지만 현재까지는 그 위치를 섬진강 유역에서 찾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고 보았다. 기문이라는 지명을 이해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한원』의 基汶河를 섬진강에 비정할 수 있으며, 이른바 ‘기문·대사 분쟁’의 성격이 섬진강 교통로를 둘러싼 갈등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섬진강 교통로는 479년 대가야가 남제에 사신을 파견할 때이용한 경로이며, 그 교통로의 장악을 통해 왜와의 교역을 통제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백제는 대가야가영향력을 주변으로 확대할 수 있던 주된 요인을 섬진강 교통로의 장악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이를 근절하기 위해 기문과 대사에 대한 공략에 나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이해는 『일본서기』에 기록된 반파를 고령의 대가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성립할 수 있다. 최근 반파의 위치를 장수지역에서 찾으려는 견해가 문헌의 새로운 해석과 봉수 유적 등 고고자료의 발굴 결과를 근거로제기되었지만, 『일본서기』 기록의 문학적 윤색을 사실로 전제하고 고고자료를 해석한 결과 도출된 견해라는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현재까지는 반파를 고령의 대가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양직공도』 백제국사조와 『삼국사기』의 우륵 12곡 관련 기사를 통해 같은 시기에 백제와 대가야가 기문을 비롯한 전북 동부지역을 자신의 영역 또는 영향권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전북 동부지역은 대가야와 백제 모두의 의식에서 자신의 영역으로 인식되었지만, 실제로는 두 세력 모두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지역이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양국의 영역 인식이 交錯하는 지역으로서 전북 동부지역을 이해할 때, 그 지역에 존재했던 정치체의 실상에 좀 더 가까운 접근이 가능할 것이며, 향후 이러한 관점에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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