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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차승현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104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249 - 290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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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왕권이 점차 약화되다가 사실상 소멸해버린 10세기 남부 프랑스에서는 백이나 부백들이 혈족 또는 측근을 주교나 수도원장으로 임명하고 이를 통해 교회의 토지와 여타 권리들을 장악했다. 또 이들에 의해 임명된 성직자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각종 교회관직을 부여하고 교회 재산을 임의로 활용했다. 이처럼 고위 성직자들이 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속세와 교회의 경계선은 매우 흐릿했다. 10세기 초에 등장한 나르본 부백 가문은 가족 형태를 봉건사회에 적합한 부계 위주의 수직적 구조로 전환하는데 성공했으며, 권력의 원천인 토지와 여타 특권들을 빠르게 늘려가면서 주군이었던 툴루즈 백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했다. 나르본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던 이들은 주교 임명권을 획득하여 가문 구성원을 대주교 자리에 앉히고 교회를 직접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1019년 세르다니아 백 가문 출신의 기프레드가 성직매매를 통해 대주교 자리를 획득하면서 나르본 교회는 부백 가문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기프레드가 카롤루스 군주들이 작성한 특허장을 근거삼아 독자적인 권력 확립에 나서는 동시에 다수의 공의회들을 통해 나르본 부백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하자 대주교직을 가산으로 간주하던 부백 가문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수십 년에 걸쳐 대주교와 부백의 충돌이 발생했다. 1059년 아를 공의회에서 기프레드의 비리와 만행을 고발하여 대주교직을 되찾으려던 부백 베랑제의 시도는 실패했으며, 베랑제 사후에는 바르셀로나 백의 세력 확장을 우려한 툴루즈 백이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나르본을 통제하기 위해 대주교의 손을 들어주고 부백 가문이 내분으로 인해 약화되면서 기프레드는 확고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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