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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성서영 (淸華大學)
저널정보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동아시아불교문화 동아시아불교문화 제48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301 - 356 (5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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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白塔은 遼 興宗의 생모 章聖皇太后가 발원한 석가불사리탑이다. 불탑의 형식은 팔각7층누각식탑으로, 매층 탑신마다 대형의 부조상이 배치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바로 76좌의 경당이다. 경당은 요대 처음으로 불탑 부조상의 題材로 출현하였으며, 경주백탑 탑신에 배치된 부조상 중에서 가장 수량이 많다. 뿐 아니라 독립 제작된 경당처럼 당신에 다라니가 새겨져 있다. 각각은 「修造佛塔陀羅尼」, 「根本陀羅尼」, 「自心印陀羅尼」이다. 3개 다라니는 당나라 초기 彌陀山이 한역한 『無垢淨光大陀羅尼經』에 출처를 두고 있다. 더욱더 주목되는 것은 탑찰에는 동일한 다라니가 새겨진 단층 소탑이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비록 경당과 소탑은 형식이 다르지만, 모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거하여 제작된 넓은 의미의 ‘무구정광소탑’이다. 77좌의 수량은 경전에서 언급된 근본다라니 작법을 따른 것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총 6개의 다라니가 소개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근본다라니는 유일하게 ‘망자 추복’과 ‘국가 수호’라는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경주백탑의 발원자 장성황태후는 遼 聖宗의 추복을 빌고, 西夏와의 전쟁 승리와 末法時代 요나라의 영속을 기원하기 위해 경주백탑을 건립하였다. 이를 위해 탑찰과 탑신에 각각 소탑과 경당 형식의 ‘무구정광소탑’을 배치한 것이다. 경전에서는 77좌의 小泥塔를 제작하여 불탑 내에 안치하라고 하였으나, 경주백탑에서는 소탑과 경당 부조로 제작하였으며, 양자는 불탑 외부에 돌출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요대 성행한 ‘불정존승다라니 신앙’과 ‘요대 新팔대영탑 신앙’이 우선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경주백탑 표면의 77좌 무구정광소탑은 경전에 기술된 전통적인 작법 내용을 따르면서도 요대 다라니 신앙의 특수한 관습이 결합되어 전통과 혁신이 공조된 매우 창의적인 작법이 창출되었다. 동시에 요대 다라니 신앙의 절정 양상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朝陽東塔 지궁에서 출토된 開泰六年 경당을 통해서 황실에서 좀더 일찍 무구정광대다라니를 신앙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경주백탑의 사례와 함께 망자는 모두 黑山으로 돌아간다는 샤머니즘적 사유체계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매우 중대한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고려할 것은 한국의 무구정광 신앙과의 관련성이다. 잘 알다시피 무구정광신앙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의거하여 발전한 신앙이다. 비록 경전은 당 장안에서 한역되었지만, 통일신라 왕실에서 대성행하였으며, 이는 고려 중엽까지 지속되었다. 현재 사료와 실물 자료의 한계로 요대 무구정광 신앙의 연원이 한국에 있음을 명확하게 입증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양자간 신앙의 기초적인 내용이 일치하며, 경주백탑에서도 舊製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결정적 고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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