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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성서영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불교학회 한국불교학 한국불교학 제103호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169 - 213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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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경주백탑은 1047-1049년 장성황태후가 발원한 석가불사리탑이다. 7층 팔각 누각식 전탑으로, 매층마다 여러 대형 부조상이 배치되었다. 그중 초층 탑신 팔대영탑은 인도 팔대성지에 세워진 불탑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기본적 으로 석가의 주요 행적 팔상(⼋相)을 상징한다. 요대에는 팔대영탑이 불정존승 다라니의 신묘한 “진첨복영(塵沾覆影)” 기능도 있는 것으로 믿어졌으며, 주로 13층 밀첨식 소탑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유행을 선도했던 작품은 중희 11-13년 요 황실의 지원하에 중수된 조양북탑이다. 조양북탑 중수와 경주백 탑 건립은 시간적으로 3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경주백탑 초층 탑신 팔대 영탑의 형식과 내용은 조양북탑의 예와 확연하게 다르다. 팔대영탑 형식은 3 층 소탑이며, 그 사이에는 호인상, 서수, 역사가 배치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경주백탑 초층 탑신 팔대영탑의 진면목을 파악하고자 하였으 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3층 밀첨식 소탑이 최초의 요대 팔대영탑의 형식으로 알려져 있으 나, 가장 먼저 출현한 형식은 3층 소탑이다. 즉, 경주백탑 초층 탑신 팔대영탑 의 3층 형식은 복고 형식으로의 회귀이다. 둘째, 학계에서 요대 팔대영탑의 주존은 비로자나불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으나, 경주백탑 초층 탑신 팔대영탑의 주존은 석가열반상이다. 그 사이에 배 치된 호인상과 역사상은 바로 열반에 든 석가를 마지막으로 공양하기 위해 온 이들을 표현한 것이다. 셋째, 경주백탑 초층 탑신 팔대영탑의 주존과 조합 변화는 요대 팔대영탑 신앙 변화가 아니라 황실의 특수한 배경과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요 중희 연 간 황실은 1052년에 말법시대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말법 시점이 가까워져서 거행된 경주백탑 건립 불사에서는 이러한 신앙이 한층 고조되었다. 천궁에 안 치된 사리장엄구와 공양물에는 말법 시대 미륵 하생과 법의 영속에 대한 염원 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이러한 종교적 열망은 또 다른 유형의 팔대영탑이 탄 생된 계기가 되었으며, 상술한 주존과 조합 변화는 요대 후기 불탑에도 계승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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