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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혜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69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87 - 129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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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 초기 궁궐 내 절의 설치 과정과 변동에 대해 고찰하였다. 조선 초기에 존재하던 궁궐 안[內]의 절[願堂, 佛堂]은 내원당(內願堂), 내불당(內佛堂)으로 불렸는데, 이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해야 한다. 먼저, 고려와의 연장선 위에서 살펴야 하며, 조선 초에는 개성과 한양으로 거듭된 천도가 이루어져 수도와 궁궐의 이동을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궁궐 안에 위치한 내원당과 한양 도성 안에 위치하되 궁 밖에 설치된 정업원은 전혀 다르므로 구분해야 한다. 조선의 내원당은 건국 직후부터 확인된다. 개경에 수도를 두었던 국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한양으로 천도한 후 1396년(태조 5) 1월에 신궁 경복궁에도 설치되었다. 이 경복궁 내원당은 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하여 생활하던 1412년(태종 12)에 폐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태종이 설치한 창덕궁 문소전(구 인소전) 불당은 1433년(세종 15)까지 존재한다. 내원당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로 내원당은 궐 안을 대표하는 하나의 사찰이라기보다, 왕의 발원에 따라 궁 안에 다수 건립될 수 있는 불당이었다. 둘째로, 내원당은 국왕의 거주 공간인 궁궐 안에 구체적이고 다양한 목적하에 설치되었다. 셋째로, 궁궐 내 혼전으로서의 진전에 부속된 불당도 하나의 내원당으로 인식되었는데, 이는 왕실 상장례의 변화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선 초 건립되는 내원당은 모두 현왕인 태조와 태종, 세종의 의지와 발원으로 설립된 것이었다. 창덕궁 내원당은 1433년(세종 15)까지 유지되다가, 세종이 경복궁에 문소전을 새로 건립하고 원묘(原廟)로 단장하면서 철거되었다. 그러나 1448년(세종 30)년 세종은 다시 경복궁 문소전 옆에 내원당을 짓고자 하는데,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궁 안이 아닌 궁 밖에 건립하게 된다. 이로써 ‘내원당’은 이름과 달리 궁 밖에 건립되면서 ‘궁궐 내 불당’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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