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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순홍 (도쿄예술대학)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日本學(일본학) 日本學(일본학) 제54권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1 - 3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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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본 미술계에서 활동한 곽인식의 1960년대 유리 작품을 사회 운동적 측면에 입각해 살펴보았다. 그동안 곽인식이라는 한 예술가의 작품세계를 논할 때, 한일의 논자들은 그의 깨진 유리 작품이 훗날 이와 유사한 작품을 발표하게 되는 이우환에 끼친 영향에 대해 주로 논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 필자는 기존의 논의가 모든 예술작품을 양식사적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곽인식의 작품이 지닌 의미를 일반화시켰다고 파악하고, 후대의 관점이 아닌 당시 그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논증하고자 했다. 이러한 조사 과정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곽인식이 표면적으로는 예술에서의 전위를 주창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좌우 이념의 대립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그 자신의 모습이 깨진 유리에 투영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곽인식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자신의 과거 행적, 즉 한때 총련계 작가들과 함께 통일 운동을 펼쳤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곽인식이 어느 특정한 시점에 가지고 있었던 사회의식을 괄호에 넣고 그의 유리 작품을 바라보게 되면 그러한 작품을 산출시킨 동인은 은폐되고, 그저 실험정신으로 충만했던 예술가상(像)만이 남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논자들이 곽인식의 중요성은 재검증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막상 간과해 온 이러한 그의 사회 운동적 측면이야말로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곽인식 예술의 사각지대였다는 점을 필자는 제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곽인식을 더욱 넓은 견지에서 냉전 아래 온갖 풍파를 겪은 예술가로 볼 있을 것인지 그 해석의 가능성을 찾는 일은 앞으로 한일의 전후 미술사를 연구하게 될 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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