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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엄경흠 (신라대학교)
저널정보
동양한문학회 동양한문학연구 동양한문학연구 제48권 제48호
발행연도
2017.10
수록면
199 - 221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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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강과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 탓에 신선의 땅, 삼신산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사실 부산을 신선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다른 지역과 다를 바 없이 隱逸, 養生, 修道 등의 태도를 가진 전통적 신선사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지형이나 경관을 보고 신선의 땅으로 생각하는 시각적 인식 태도는 많지 않았다. 그 결과 신선과 관련된 오래된 지명들은 모두 은일, 양생, 수도 등 신선사상과 관련된 인물과의 관련성이 있는 곳, 그 가운데서도 산에 국한되었고, 막연한 신선과 관련된 지명은 나타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동래를 ‘동쪽의 蓬萊’라는 지명의 유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조선조 말은 전통적인 신선사상이 민족적인 신선, 산신사상으로 확대되면서 신선의 땅에 대한 인식 또한 확대되어 갔고, 이러한 인식에 삼신산의 환상이 더해져서 부산에서도 원래 제대로 된 행정적 지명이 없던 지역, 특히 바닷가에 신선 관련 지명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일본식 지명으로 바뀌었던 지명은 해방 후 원래의 지명을 회복하거나 새로운 지명을 획득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인들이 많이 생활하였던 해안가의 지명들은 조선조 말에 형성된 신선의 지명으로 회복되어 가거나, 새로운 신선의 땅으로 이름 지어지는 경향이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조 말 형성되었던 민족주의적 신선, 산신사상에다 해방을 맞이한 상황에서 일본에 대한 반일의 감정까지 더해져 생겨난 현상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부산의 남쪽 바닷가를 신선의 땅으로 이름지어가게 된 연유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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