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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철희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실학학회 한국실학연구 한국실학연구 제42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305 - 33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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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득공은 18세기 조선 지식인 중 옛 북방영토에 대한 인식과 중국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는 의식의 변화과정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20대 백탑동인들과 소품문과 시문학에 열중하던 유득공은 1778년 북경의 청나라 문사들에게 보내기 위해 지은 『이십일도회고시』를 계기로 역사방면으로 관심을 돌려 이후 『발해고』와 『사군지』 등 북방영토와 역사의 연구에 큰 성과를 남겼다. 『이십일도회고시』는 민족적 역사의식이나 북방경략의 의지가 관철되어있다기보다 만주족 치하의 한족 지식인과 망국의 슬픔을 공감하기 위해 지은 작품이었다. 같은 해 심양에 사행을 다녀오며 요동에서 지은 시는 고구려 고토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 있지 않는 반면, 소중화 의식이나 정묘, 병자호란에 대한 울분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십일도회고시』는 단순한 회고시가 아니라 역사서의 성격도 지니게 되면서, 부여, 옥저 등 북방역사를 제외하고 조선의 역사적 영역을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비판을 만회하기 위하여 유득공은 북방역사 탐구에 매진하여 『발해고』를 저술하며 고구려 고토회복 의식을 드러내었고, 몽고, 여진 등 동북아 제민족의 역사문화로 관심의 폭을 넓혀 나갔다. 1790년 12년 만에 두 번째 사행을 떠나 북경과 열하를 다녀온 유득공은 그의 여행기에서 만주족 인물과 통치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교만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한족지식인의 일면을 드러내기도 하여 양쪽에 대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취하였다. 그 결과 당시 여행기의 대단원이라 할 수 있는 <鳳城>에서 고구려 정통론과 고구려, 발해, 여진, 만주로 이어지는 동북아민족의 계통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소위 동북아 정세론이라 할 수 있는 이 주장은 5년 뒤 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고구려의 강성함에 대비하여 신라를 倭 문화에 물든 야만의 문화로 비하하였고, 고구려와 발해가 여진족과 만주족과 친밀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하나의 계보로 묶었는데, 이러한 주장은 당시 조선의 지식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득공의 동북아 정세론은 명나라의 패망원인을 북방 민족의 강성함과 남방 한족의 문약함을 대비하는 남북문화 비교론에서 찾았던 김창업과 이기지의 의론과 연계되며, 홍대용이 『의산문답』에서 제기하였던 중화문명의 숭문주의에 대한 懷疑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중국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탈중화’의 궤적이라 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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