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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세근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대동철학 제78권
발행연도
2017.3
수록면
329 - 347 (19page)
DOI
http://dx.doi.org/10.20539/deadong.2017.7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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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우리말이 왜 청색과 녹색을 구별하지 않은가에 대한 시론적인 답변이다. 색깔을 다섯으로 한정시키는 오행론적 사고에서 청록을 함께 묶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말에서 ‘파랗다’와 ‘푸르다’는 때로 녹색을 때로 청색을 가리키게 되었다. 한문에서도 청색은 녹색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만 녹색의 외연이 청색보다 작아 녹색이 청색을 가리키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지개의 경우, 뉴턴 이후 유대기독교적인 사유에서 창조의 완결수인 7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 영향 아래 우리는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라는 형식적인 사고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사유에서 무지개는 ‘오색영롱’(五色玲瓏)하다. 그것은 오행으로 무지개를 보고자 하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일종의 형이상학으로 일련의 전제(a set of assumptions)로 이루어진다. 형이상학도 나름의 눈이 있어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그렇게 틀을 잡는다. 고대그리스의 사유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우리의 오행은 세계와 우주의 이해뿐이 아니라 윤리철학까지 담고 있는 정교한 형태의 형이상학으로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지개 자체는 아날로그로 되어있지만 무지개의 색깔을 보고 말하는 우리의 사고는 디지털로 되어있어, 그것의 색깔을 다섯 가지나 일곱 가지로 다르게 보고 있다. 그것은 형이상학이 자연물에 개입한 좋은 예다. 우주를 질서 있게 보고자 하는 피타고라스의 정신이 코스모스(kosmos)를 낳았다면, 우주를 질서 이전의 상태로 보고자 하는 장자의 정신이 혼돈(混沌)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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