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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여성구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81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101 - 13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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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대영랑이 화랑인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하였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남변제일과 미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였고, 앞서 살핀 남변제일에 이어서 미힐을 살핀 글이다. 효소왕대 미힐은 황금 100푼을 바치고, 관등과 租 100석을 받았다. 반면 경덕왕대 대영랑은 白狐를 바치고, 관등만 받고, 곡물을 받지 못했다. 국왕의 하사품의 有無나 지급량의 차이에 대한 배경이나 원인은 진상품의 가치, 왕의 성향, 시대 상황, 수급자의 신분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듯하다. 왕의 성향이나 시대 상황은 한정된 지면에서 논하기에 그 내용이 다양하고 주관적인 해석에 치우칠 경향이 있으므로, 본고에서는 진상품의 가치와 수급자의 신분을 밝히는 데 집중하였다. 미힐이 진상한 황금 100푼(12.5g)의 가치는 租 100석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租 100석은 强首가 사지급(대사-소사)으로 복무할 때 받은 1년치 녹봉이었다. 미힐이 남변제일이라는 대사 관등을 받은 것을 보면, 4두품 이상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사지급의 1년치 녹봉에 해당하는 租 100석을 받은 것은 남변제일이 대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그의 직무는 황금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금광 개발이나 금광석의 제련술과 연관 지을 수 있다. 한편 군현명을 쓰지 않고, 신촌만 써도 모든 이들이 알 정도라면, 父王 신문왕의 방문지였을 개연성이 높다. 신촌은 신라 중대 왕실과 친연성을 보이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의 거주지인 신촌은 금광산지이거나 그 주변이라고 생각되며, 신문왕이 순행시 방문해서 음악을 들었던 신촌과 동일한 지역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촌은 금광산지와 향악이 있는 곳으로 비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주 주변, 소백산맥 이남에서 찾아보면, 금광과 향악이 있는 곳으로 안동・경산・울주・영천・의성・성주 지역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황금의 양에 비해 많은 곡물이 지급된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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