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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누리 (이화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6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93 - 22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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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무렵 유럽에서는 국가의례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이는 곧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새롭게 만들어진 일본의 ‘축・제일(祝・祭日)’ 역시 천황 중심의 국민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서 창출되었으며, 일본인에게 천황 중심의 국체(國體)관념을 주입하여 국민통합을 이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서도 서양의 국가기념일 형식에 영향을 받아 갑오개혁기부터 국가기념일인 ‘경절(慶節)’이 제정되었다. 경절은 대한제국이 지향하였던 자주독립이라는 가치와 황제국으로서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러일전쟁 이후 일제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일본의 축・제일이 조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일부 축일(祝日) 경축식의 참여와 일본국기 게양을 강요하였다. 반면 대한제국의 경절은 점차 간소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조선에서의 일본 축・제일 도입은 1910년 강제병합된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제는 각종 휴일 규정을 모두 대한제국의 경절에서 일본의 축・제일로 교체하였고, 이에 상응하는 역서(曆書)도 새롭게 편찬했다. 총독부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동시에 축・제일을 경축하는 시행체계가 확립된 것이다. 이와 같이 기반이 마련되면서 조선에서는 각종 축・제일이 시행되었다. 축일(祝日)에는 경축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일제는 조선의 전통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조선인들의 삶 속에 축일을 침투시켜 나가면서 축일은 점차 조선사회에서 ‘축제화’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제일(祭日)의 경우 신사시설의 미비 등으로 시행에 어려움을 겪으며 조선인들은 이를 ‘휴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일제는 제일의 제전(祭典)을 대체할 수 있는 각종 행사를 통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선전하였다. 축・제일의 적용은 조선 사회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축・제일로 대표되는 일제의 ‘제국적인 시간’관념이 확장되면서 양력으로 구성된 시간관념을 비롯한 각종 일본적인 생활양식이 조선에 적용되었다. 이는 조선의 ‘전통적인 시간관념’과 충돌하면서도 공존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한편 1910년대 축・제일 시행에 문화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축・제일은 조선인들에게 점차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무단통치기’라고 일컬어지는 1910년대에 시행된 축・제일은 일제가 식민통치를 강화해 나가는 하나의 문화적인 방법으로 활용되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조선인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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