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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국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저널정보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논총 인문논총 제79권 제2호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361 - 39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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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안익태가 외트뵈쉬 기숙학교를 떠난 후인 1940년 12월부터 부다페스트의 비거도(Vigado)에서 음악회가 있었던 1941년 10월 10일까지의 그의 행적과 그의 지휘 무대에 대한 헝가리의 평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당시 기록된 공연 프로그램 등을 근거로 하여 안익태와 에하라 고이치의 조우는 1940년11월, 루마니아에서 일본 측이 주최한 행사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에하라는 자신의 글에서 안익태가 유럽에 머물며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그를 찾았다고 하였는데, 그때는 안익태가 외트뵈쉬 기숙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기와 일치함을 알 수있다.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안익태가 에하라의 저택에 머물렀던 시점과 지휘자로서조명 받기 시작하는 시점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1년 10월 10일, 안익태는 이전의 지휘 무대와 다른 형식과 내용으로 보다 ‘제대로 된’ 지휘 무대에 서게 된다. 이 음악회를 시작으로 그의 활동은 독일에서 본격화되며, 이후 약 2년 동안 자신의 경력에 있어서 최고의 시기를 맞게 된다. 본고에서는 헝가리 자료들을 통해 이 10월 10일의 음악회에 대해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이 음악회와 관련하여 당시 일부 신문과 음악 전문 저널에 실린 비평을 중심으로 그에 지휘에 대한 음악적 평가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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