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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창우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86호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75 - 10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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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보이는 후고구려?궁예 관련 정보를 분석하여 인식의 양상을 도출하기 위한 시도이다. 먼저 안정복이 자신의 벗인 이가환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통해 궁예와 후고구려에 대한 그의 관심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안정복은 조선 前代의 통사를 저술한 『동사강목』의 저자였으므로, 그가 특정한 역사적 대상을 향해 깊은 관심을 보인 점이 우선적으로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이에 기존의 연구들이 주로 『동사강목』에서 ‘정통’과 관련이 있는 나라의 문제에 치중했다면, 정통의 대척점에 서 있는 ‘무통’의 문제에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 우선 궁예와 후고구려가 ‘도적’과 ‘무통’ 국가로 설정된 양상과 계기를 살폈다. 그 결과 궁예는 ‘도적’이라는 점이 『동사강목』 도처에서 강조되었고, 그의 후고구려는 단군?기자를 시작으로 하여 마한, 문무왕 9년 이후의 신라, 태조 19년 이후의 고려를 거쳐 조선으로 이어지는 ‘정통’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한 채 비난의 표적이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다만, 이들이 부정적으로 서술된 이유는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달랐다. 안정복은 ‘정통’ 국가인 신라를 넘본 후고구려와 궁예에 정통과 군주로서의 위상을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려 태조를 위한 배려의 차원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는 ‘춘추대의’에 기반을 둔 명분질서의 탐색이라는 시대적 조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정통론’의 관점에서 기존의 부정적 인식이 답습되었던 것과 함께, 『동사강목』 내에 궁예와 견훤을 우리 문적의 소멸 주체로 지목하여 비판하는 대목에도 주목해보았다. 기록의 문제이긴 하지만, 고려시대의 경우 역사서 편찬을 위한 자료의 문제를 거론했던 주체들이 궁예나 견훤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례는 조선시대 식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특수한 견해인데, 별다른 문헌적 근거에 의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후고구려나 후백제 모두 역사서 편찬이나 기록물 생산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기왕의 성과를 감안했을 때, 막연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생각으로 추정하였다. 난세의 시기에 한낱 도적에 불과한 이들에게 불합리한 누명이 씌워진 것이다. 궁예나 견훤의 처지에서 본다면 굉장히 억울할 이와 같은 설명은 사건의 발생 시점과 이를 바라보는 주체 사이의 간극이 제법 크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인식의 주체와 그가 처한 시대적 배경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의 계기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여기에서 분기된 자유분방한 역사적 인식의 양상을 『동사강목』을 매개로 살펴본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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