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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정화 (경상국립대학교)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93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241 - 27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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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시대 지식인이 남해 금산을 유람하고 남긴 遊山 기록을 중심으로 금산 유람을 개괄하고 그들의 현실 인식을 살펴보았다. 금산 유람록은 현재 29편이 발굴되었는데, 1609년 8~9월에 있었던 趙㻩의 유람을 기점으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유산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국내 여느 명산 유람과 비교하여 대략 1백 년 정도 늦게 시작된 셈이다. 남해 금산 유람은 조선조 지식인이 산과 바다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경험이었다. 유람한 사람들은 여타 지역 문인과 인근 江右 지역 南冥學派 후학들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인근 江右文人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다. 유람 계기도 뚜렷한 구분을 보였는데, 타지인은 남해에 유배 온 친인척을 찾아오거나 지리산권역에 공무로 왔다가 금산을 오르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강우문인은 모두 금산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는 것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특히 타지인은 그들의 세거지에선 금산에 대해 듣지 못했다가 남해에 온 이후 그 명성을 듣고 오르는 것으로 보아, 남해 금산은 강우문인의 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람로는 8할 이상이 남해 노량포구에 있는 李舜臣의 忠烈祠를 거쳐 금산으로 향했다. 이는 남해 이순신의 유적이 그들의 금산 유람에 중요한 이유였음을 알게 해준다. 여느 명산에 비해 금산에서의 일정은 1~2일뿐이고, 산 밑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거리 또한 매우 짧았으며, 수백 년 동안 산행로가 바뀌지 않고 거의 일관되게 나타났다. 그중 지나는 곳마다 당대 지식인으로서의 현실 인식을 표출한 이들도 있었는데, 申命耈와 朴致馥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신명구는 금산으로 가는 도중 하동 白土峴에서 당시 貢物로 바치던 백토의 부당한 징수와 백성들의 고충 등을 토로하였고, 남해의 공물인 柚子와 관련해 남해 백성들이 당하는 불공정한 세금 부담을 비판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태평 시절로 인해 해이해진 바닷가의 군사시설과 군령 체계 등을 조목조목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박치복은 남해와 금산에서 목격한 巫俗 행위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늦추지 않았다. 특히 바닷가 지역인지라 이러한 무속 행위가 성행했는데, 분명한 근원도 없이 그저 앞 세대부터 전해져 온 미신적 행위가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고 지적하였다. 옛 문헌에서 前例를 찾아 따지고 해명하고 설득하는 듯한 박치복의 글쓰기는 당대 지식인의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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