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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민영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11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139 - 17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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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천도교의 민족운동가 金亨俊의 1920~30년대의 천도교 관련 행적을 중심으로 다룬 논문이다. 이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형준의 성장 과정과 사회 활동 초기에 천도교가 강한 영향을 미쳤음을 고찰하였다. 김형준은 가난한 천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천도교의 교육을 받으며 지식을 쌓았고, 용천 지역 농민운동을 비롯한 실천 행동에 주력하였다. 비록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나, 천도교는 그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둘째, 김형준이 천도교단 내에서 유명세를 얻게 된 까닭을 밝혔다. 김형준이 종교를 내면화하여 이것을 실천 방식으로 확립한 것은 일본 동경 유학 시기였다. 그는 젊은 천도교 신파가 갖춰야 할 덕목들을 갖춘 인재였고, 여러 활동들을 통해 천도교 전체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교리를 내면화하고 활동력을 갖춘 김형준은 귀국 후 천도교청년당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천도교 중앙 조직에서 청년의 가치를 강조하며 다양한 직책을 맡았음이 확인되었다. 셋째, 1930년대 중반 천도교단의 활동 방침이 바뀌는 과정에서 천도교 지식인이 어떻게 대응하였는가를 고찰하였다. 김형준은 귀국 후 천도교청년당 중앙 조직에서 청년의 가치에 주목하며 그들의 육성에 주력했으나, 건강 문제와 더불어 천도교단의 활동 방향 변화가 맞물리면서 기존 활동 유지가 어려워졌다. 그러자 김형준은 천도교와 점차 거리를 두며 완만하게 철학 쪽으로 이동을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하였다. 다만 천도교에 집중하던 시기 내면화했던 많은 것들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 글은 천도교 신파 세력이 강했던 지역 출신의 어느 천도교인이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천도교리에 깊이 심취한 연유와, 1934년 천도교의 민족운동 노선 변화에 대한 대처 방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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