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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명선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95호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261 - 30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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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는 1921년부터 간도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천주교는 1930년대 중반에 만주국 정부로부터 만주국내에서 영향력 있는 종교로 인정을 받게 된다. 간도지역을 관할한 연길교구는 1939년도에 복음화율이 1,74%로 당시 조선의 전체 7교구 중에서도 가장 교세가 컸던 교구였다. 그리고 연길교구 각 본당 부속학교인 해성학교는 간도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조선인 대상의 그리스도교계 사립학교 중에서 학생수가 가장 많았는데, 이는 연길교구가 추진한 교육 사업과 가톨릭 운동의 성과였다. 그렇다면 베네딕도회가 간도에서 교육 사업을 통해 교세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인들의 교육계 시각에서 본다면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었던 식민지상황에서, 만주국 성립 전후 연길교구의 선교활동은 선교지와 지역민의 특성을 고려한 문화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이는 지역민들의 서구 근대문화와 모국어 교수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여 시작된 일종의 ‘자선사업’이었다. 연길교구가 운영하는 선교학교에서는 성경과목을 비롯하여 모든 교과목을 각 민족의 모국어로 가르치면서 신교육과 신문화 교수를 통해 근대적 가치관을 지닌 그리스도교인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상으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겠다는 교육방침하에 종교교육을 통하여 지육(智育)과 덕육(德育)을 병행하는 교육방법을 취했기 때문에 조선인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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