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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재근 (광신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58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161 - 203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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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교회는 1913년 7월에 이웃한 성덕면 묘라교회 집회에 참석했다가 기독교인이 된 곽영욱, 정엄규, 정화선 등에 의해 만경에 신자공동체가 생기며 탄생했다. 1914년 6월 7일을 설립일로 잡는 만경교회는 김제 곡창지대에서 고유한 지역성과 공동체성을 유지하며 뿌리 내린 지역교회였다. 만경교회는 한국 향촌 지역 초기 개신교회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교회다. 우선 기독교 수용 주도층의 존재다. 한반도 전역, 특히 남부의 시골에서 탄생한 많은 교회에서는 그 지역에서 전통적인 향촌 영향력을 발휘해왔던 지역 유지의 개종이 마을 주민 다수의 개종을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상류 지배계층, 지주, 전통적 지식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의 개종이 직계 가문, 하인 및 소작인 다수의 연쇄 개종으로 이어졌다. 이들과 가문의 향촌 지도력은 교회 지도력으로 이어졌다. 만경교회의 설립자 곽영욱과 정엄규, 정화선은 만경의 현풍 곽씨 가문과 동래 정씨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세 사람의 개종이 가문 구성원 다수의 개종으로 이어지면서, 만경을 시작으로, 김제를 포함한 전북, 호남까지 확장되는 기독교인 가족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두 번째 전형은 치리(권징)의 잦은 시행이다. 16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세 표지인 말씀, 성례, 치리 중 치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행이 어려워진다. 초기 한국교회는 치리를 자주, 철저하게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만경교회도 그중 하나였다. 장기결석, 가정불화, 폭력, 이중살림, 간음, 불신자와의 결혼이 만경교회 당회가 주로 징계한 사유였다. 목회자 부족과 열악한 생활환경 등으로 전임목회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다른 많은 시골 지역교회처럼, 만경교회도 전임목사가 있었던 기간보다, 소위 ‘평신도’ 체제로 교회가 운영된 기간이 훨씬 길었다는 것도 전형의 한 모습이다. 곽영욱이 장로가 되어 당회를 가진 조직교회가 된 1914년부터 1957년까지 43년간 만경교회를 전임으로 목회한 이는 곽진근(1924.2.3.-8.31), 김수영(1931.6.28.-1932.6.5.), 윤식명(1936.3.15.-1937.4.17.), 김종한(1948.5.1.-1950.9.27.) 네 사람뿐이었다. 네 사람의 총 전임목회 기간은 5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만경교회에는 ‘비전형’의 특징도 있었다. 한국전쟁 초기에 만경교회 교인 15명이 지역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학살되었다. 학살 사건 직전에 교회의 기둥 곽영욱도 노환으로 사망했다. 특히 전임목사와 장로, 안수집사 및 서리집사, 청년들이 한 번에 살해당하면서, 최소 7년 동안 교회는 극단적 침체에 빠져 존폐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서서히 극복하고 교회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도 만경의 첫 신자, 정화선이었다.

목차

Ⅰ. 머리말: 전형과 비전형으로서의 김제 만경교회
Ⅱ. 초기 김제 기독교 역사7)와 만경교회
Ⅲ. 설립: 1914-1918
Ⅳ. 성장: 1918-1950
V. 위기: 한국전쟁과 그 여파, 1950-1957
Ⅵ. 맺음말: 지역성, 치리, 순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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