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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재정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 군사 제123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133 - 172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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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1860∼70년대 조선에서 새로 만든 砲架의 종류와 기술적 특징을 분석하고, 조선에서 포가를 제작하는 데 메이지 일본으로부터의 대포 유입이 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병인양요 이후 조선은 서구의 무기에 경각심을 느끼고 양무서적을 연구해 신무기를 제작했다. 특히 포가 제작은 극적인 변화를 보였는데, 이를 보여주는 결과물이 운현궁 小砲포가다. 그런데 운현궁 소포 포가를 양무서적을 참고해 만든 다른 포가와 비교하면, 운현궁 소포 포가에는 양무서적만으로 습득하기 어려운 서구 군사기술이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에서 양무서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구 무기를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실물을 접한 정황을 드러낸다. 이러한 정황은 메이지 일본의 외무성에서 작성한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외무성의 문서에 따르면 1873년 조선에서는 메이지 일본에서 만든 서구식 대포인 4근 산포를 수입했다. 또한 초량 왜관에서는 4근 산포를 비치해 시연하고 이를 조선인들에게 공개했다. 이처럼 조선이 공식 교역과 왜관 시연을 통해 접한 4근 산포의 포가가 운현궁 소포 포가 제작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운현궁 소포 포가 제작의 배경으로는 신미양요 직후 대포 개선의 필요성을 실감한 조선의 절박함, 그리고 급변하는 국제 무기 시장에서 구식 재고가 된 4근 산포를 일부 처분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들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운현궁 소포 포가는 병인양요 직후부터 1870년대까지 이어지는 조선의 신무기 제작 노력의 일면, 그리고 조선이 일본제 대포 유입을 통해 국제적 무기 유통망에 포섭되는 정황을 드러낸다.

목차

초록
1. 서론
2. 1860∼70년대 砲架 제작과 운현궁 小砲 砲架
3. 개항 이전 메이지 일본 大砲 유입의 과정과 목적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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