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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미선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9輯
발행연도
2022.11
수록면
5 - 40 (36page)
DOI
10.31335/HPTS.2022.1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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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사군지』의 「명환」, 「인물」조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유득공의 자료에 대한 인식 및 『사군지』 편찬의도를 고찰하였다.
조선전기 지리지에서도 그러하듯, 「명환」, 「인물」 등은 『사군지』가 지리지로서 갖추어야 할 조목들이었다. 인물들은 지역-직위-출처를 기준으로 수록되었다. 지역별로는 현도-낙랑-대방순이었고, 직위는 군의 태수와 그 이하로 나뉘었으며, 지역과 직위가 같을 경우 중국 사서별로 기록되었다. 이는 중국 사서에서 사군(四郡)과 관련된 기록들을 선별한 후에 지리지 형식에 맞게 조목을 세우고, 그 조목에 맞게 기록을 수록하였기 때문이다.
유득공은 왜 중국 사서를 중시했을까? 그는 중국측에 전하는 우리의 기록으로 우리의 역사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동사(東史)로 대표되는 우리 역사서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여기서 동사는 『삼국사기』가 아닌 홍만종(洪萬宗)의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1705)이었다. 『동국역대총목』에서는 단군-기자-신라로 이어지는 신라정통론을 주장하였다. 북방 중심의 역사계승을 중시한 유득공에게 이 사서의 내용 및 주장은 동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 정사에서 우리 역사와 관련된 기록들(東國傳)을 뽑아 우리 역사서를 펴내고자 했던 것이다.
일찍이 유득공은 『발해고』에서 신라-발해의 남북국을 설정하고 고구려-발해 계승을 강조하였다. 이제 기자(箕子)와 고구려의 계승관계를 밝히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그는 한사군을 통해 4군-2군-3군-삼국이라는 한사군과 삼국의 역사계통을 수립하였다. 역사계통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영토로서의 계승관계도 분명히 해야 했다. 문헌고증에 기초한 『발해고』의 경우 유득공 스스로 확신이 없어 ‘고(考)’라고 하였으며, 실제 1790년 연행(燕行)을 다녀온 후 지리고를 중심으로 수정이 가해졌다. 이 과정에서 요동을 중심으로 한 북방 지리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연행이었던 1801년에 북방 지리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것 같았던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고, 의심나는 것을 귀국 후 다시 역대 지(志)를 모아 살펴봄으로써 ‘확신’이 생겼다. 그 결과물이 『사군지』였으며, 이로써 기자-한사군-삼국-남북국으로 이어지는 유득공의 역사계승 정통론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사군지』 「명환」· 「인물」조 분석
Ⅲ. 유득공(柳得恭)의 자료 인식과 『사군지』 편찬의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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