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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나행주 (건국대) Shoko KITAYAMA (Hokkaido University)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77집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227 - 265 (39page)
DOI
10.18496/kjhr.2022.08.7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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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건국신화가 국민형성과 국가추진에 끼친 영향력에 주목하여 조선총독부 통치하에서 조선과 일본의 건국신화의 위상에 대해 고찰한다. 식민지조선에서 일어난 「단군논쟁」에서는 일본인연구자에 의한 압도적인 단군부정론이 지배적이며, 그 근거에는 다양한 신화군을 인정하지 않는 기기(記紀)의 배타적인 「일국일신화화」의 논리가 있었다. 메이지정부가 천황제의 정신적 지주로 삼은 기기는 그 성립과정에 있어서 「일국일신화화」의 연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화의 윤멸」을 행한다. 구체적으로는 기기 이외의 신화가 천황가의 사정에 맞춰 취사되고 개변 흡수되어 말살되어서 기기신화가 성립했다. 장기간 지속된 무가사회에 있어서 기기의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았는데 메이지시대가 되면 천황제와 함께 일본신화=기기라는 「일국일신화화」가 철저하게 되었다. 그 영향은 당연한 일이지만 식민지조선에도 미쳐 역사를 4천 년 이상이나 소급하는 단군신화는 조선사편수회의 어용학자들에 의해 철저하게 비판되었다.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조선사』에 단군조선의 조는 없다. 일본인연구자들의 강인한 「일국일신화화」의 배경에는 기기밖에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인 배타성은 물론 박은식이나 신채호 등이 민족주의 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단군을 위치시킨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그들이나 『삼국유사』의 재발견에 의해 단군복권을 목표로 했던 최남선, 단군신화의 중용에 회의적이었던 백남운이나 김태준 등의 단군언설에서는 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조선민족으로서의 자부심과 기나긴 역사에의 자부심이 담겨있다. 일본인연구자와 조선인연구자의 논의는 국민국가와 건국신화의 불가분성이라는 점에 있어서 실은 동질적이며 일본이 초래한 「일국일신화화」의 충격은 그대로 조선민족이 주체가 되는 「일국일신화화」의 희구로 이어졌다.

목차

국문초록
1. 시작하며
2. 제1장 기기(記紀)의 「일국일신화화」
3. 제2장 단군신화의 소재
4. 마치며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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