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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호 (경남대학교) 김용재 (성신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양명학회 양명학 陽明學 제64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207 - 23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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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유학사상계를 ‘道統’과 ‘實心’의 管見에서 조망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유자의 철학적 특성을 분석하였다기보다는, 국내외적으로 격동기였던 이 시기의 사상사 흐름을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본 것에 불과하다. 다만, 주자학적 도통을 강조한 ‘전우’와 주체적 실심을 내세웠던 ‘이건승’의 궤적을 양쪽의 대표 인물로 삼았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에는 왜란이나 호란과 같은 커다란 전쟁도 없었고, 오히려 16-18세기 조정을 시끄럽게 했던 ‘붕당정치’도 잠잠했다. 임금의 치세 기간은 조선 초·중기 때보다 평균적으로 더 길기까지 하였다. 그런데도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조선은 외세[중·러·일]의 개입에 마치 수수깡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러나 이 망국의 원인을 외부의 타격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왠지 어설프고 여전히 의아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망국 이후의 조선 유자들이 서로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이곳저곳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국외로는 유림들이 ‘파리장서’를 보내는 등, 국권 회복과 주권 수호를 위한 격렬한 부르짖음이 있었다. 하지만 전우와 같은 성리학자들은 주자학적 도통이 붕괴될 것을 이유로 유림의 활동에 고개를 돌렸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全재산을 쏟아 ‘啟明義塾’이라는 학교를 세우고,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도 그 시세를 읽지 못하는 무지몽매를 깨우쳐야만, 외세에 맞설 수 있음을 강조한 유자도 있었다. 이들이 바로 이건승을 비롯한 ‘강화학인’이고 정제두의 후손인 ‘정원하’ 등이다. 비록 이 두 사람은 서간도로 떠나 독립운동 기지건설을 위해 사력을 다했고, 결국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는 못했을지라도, 이들이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에서 우리의 주체적 ‘실심’과 ‘실효’를 거두려 했던 궤적에 대해서는 한국사상사 측면에서 대조·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易』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이치를 찾는 경서이고, 『논어』가 유가의 最古고전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까닭은 ‘시의성’과 ‘융통성’을 그 시대에 적용하라는 ‘時習’의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과연 격동기라고도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였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조선의 위정자와 학계의 유자들은 외세 개입의 눈치 보기만 열중했을 뿐,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얼마만큼 대처와 노력을 보여주었는지, 냉정히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목차

요약문
Ⅰ. 序
Ⅱ. 주자학적 道統과 주체적 實心의 岐路
Ⅲ. 조선 지식인이 근대화에 遭遇하지 못한 이유
Ⅳ. 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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