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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미일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항도부산 제3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57 - 104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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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서 여성들은 시위행렬의 선두에 섰고 격문이나 비밀문서의 인쇄와 배포도 담당했다. 3‧1운동에서 조직적 운동주체로서 여성의 활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3월 11일의 부산진 일신여학교 학생 시위이다. 이 글은 부산 경남 3‧1운동에서 첫 만세 함성이었고 동심원의 파장과 같이 시위 확산에 큰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도 인물들의 정확한 인명이나 이력, 출옥 이후 삶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부진한 연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실증적 분석 작업이다. 3‧1운동에 부산진지역 일신여학교와 공립보통학교 여학생들이 조직적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한말부터 선교사, 지역 유지와 婦人會 등 다양한 주체에 의한 근대적 여성교육기관의 설립이 다른 지역에 비교해 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은 평소 반일적 태도와 정서를 지니고 있었고, 그러한 교육 효과는 여성들이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3‧11만세시위로 체포된 이는 약 30명이었는데, 그 중 교사 2명(징역 1년 6개월), 여학생 10명(5개월), 일반 주민 1명(징역 8월)이 옥고를 치렀다.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한 달 간의 휴교 후 등교하자, 다시 인근 주민들과 함께 4월 8일 2차 시위를 전개했다. 경찰에 탐지되어 비록 거사하지는 못했지만, 4월 9일과 10일에도 동래고보, 부산제2상업학교와 함께 시위를 계획했다. 따라서 그동안 일신여학교 만세 운동에 대해 ‘부산경남지역에서 최초’라는 점만 강조해왔으나 2차 시위 실행에 이어 3차, 4차 시위를 계속 시도했다는 점에서 ‘운동의 지속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3‧11독립만세 시위 주도자를 비롯해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지역의 문화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21년 6월 창립된 부산여자청년회의 지역적 기반은 부산진이었고 인적 기반은 일신여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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