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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덕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73輯
발행연도
2022.7
수록면
9 - 53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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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고국원왕대 기록의 原典, 留記의 내용과 성격, 그리고 그 편찬 배경 등에 대해 살핀 것이다. 『삼국사기』 찬자는 구삼국사와 『위서』 고구려전, 이외의 또 다른 전승자료 등을 두루 참조하여 고구려본기의 건국신화를 찬술하였다. 이밖에 고구려본기 동명왕~고국원왕대 기록 가운데 중국 사서 또는 신라ㆍ백제본기, 고기류 등에서 인용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구삼국사에 전하는 기록이 원전이었다. 4세기 후반 소수림왕대에 추모(주몽)계와 태조왕계를 결합하여 새로운 王系를 정립함에 따라 고구려 역사를 다시 서술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 소수림왕이 留記의 편찬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600년(영양왕 11)에 太學博士 李文眞이 留記 100卷을 축약하여 新集 5권을 만들었다. 따라서 구삼국사 동명왕~고국원왕대 기록의 基本原典은 留記였다고 볼 수 있고, 이들 기록을 분석하면 유기의 내용과 성격도 대략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유기의 내용 가운데 국왕ㆍ왕실 관련 기록이 약 70%에 가까웠다. 이를 통해 天帝의 아들인 鄒牟의 신성한 혈통을 이어받은 고구려 왕실이 고구려를 지배하는 정통성과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널리 각인시키려는 의도에서 유기를 편찬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또한 구삼국사 동명왕~고국원왕대 기록에 귀족 가문의 시조들이 공을 세워 고구려 통치체제 내로 흡수 편입되거나 왕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물들에 관한 기록, 왕실과 국가의 안위 및 발전, 민생의 안정에 기여한 신료들에 관한 기록이 적지 않게 전한다. 이들 기록은 유기에서 고구려 왕실과 이들에게 복속하여 충성을 바친 귀족들이 고구려 국가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서로 힘을 합쳐 노력하였음을 드러내려 하였음을 시사해준다. 또한 유기에 전하는 유교사상과 관련된 다양한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군신관계를 재정립하는 한편, 고구려 국왕이 어진 군주로서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여 王道를 실현하려 하는 王者였음을 강조하고, 이를 매개로 고구려 왕실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당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목적이 유기를 편찬한 또 다른 배경이었음을 도출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4세기 후반 이전 고구려본기 기록의 原典
Ⅲ. 留記의 內容과 編纂 背景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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