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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인복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47집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227 - 26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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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호는 상주지역 출신의 영남 남인으로 벼슬이 대사간에 이른 관료였다. 홍호의 집안은 홍귀달 대에서부터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강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호의 아버지인 홍덕록 역시 강직하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러한 집안의 강직한 내력은 홍호와 홍여하에게도 이어졌으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다 말하고 절의를 강조하였다 홍호는 이러한 강직함으로 광해군대 이이첨의 아들이었던 이대엽이 실력이 부족한데도 과거에 합격하자 승문원에 배정되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인조대 초반에 박승종을 적몰한 것에 대해 부당함을 상소하기도 하였다.
특히 인조대 초반 박승종의 가산을 적몰한 것에 대해 부당함을 제기한 것은 인조반정 직후의 분위기에서 어려운 것이었다 홍호는 대신의 신분으로 국왕인 광해군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스스로 자살을 한 박승종에 대해 국왕에 대한 대신의 의리를 다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인조반정 직후 김류·이귀·이서 등이 박승종을 이이첨과는 다르게 처벌해야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박승종 박자흥 부자의 관작을 추탈하고 가사와 전민을 몰수하였다. 이후 박승종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이견을 제시할 수 없었으나 홍호가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결국 홍호의 의견은 사심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영변판관에 제수되는 것으로 끝맺었지만 이후에도 홍호는 박승종 적몰이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한편 홍호의 관력을 살펴보면 외직으로 영변판관·구성판관·안음현감·흥해군수 등의 지방관을 두루 경험하였으며 내직에서는 주로 병조와 관련된 일을 많이 맡아보았다. 또한 이괄의 난 때에는 경상도검찰사 정경세의 종사관으로 군량을 모으고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경상도관찰사 김시양의 군대에 소속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로 인해 홍호는 평안도와 경상도의 방어정책에 관한 내용이나 성책의 축조 첨방군 문제 포수의 양성 등 군사와 관련한 많은 의견을 개진하였다. 대부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서북방 지휘관이나 비변사 등도 모두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성책의 축조는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 일이기에 조정에서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홍호는 영변판관으로 자신의 권한 내에서 성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홍호洪鎬의 생애와 관력
3. 박승종朴承宗 처벌 논의와 군신의리 강조
4. 지방관 활동과 방어정책 건의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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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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