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李炳鎬 (공주교육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04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83 - 129 (47page)
DOI
10.37331/JKAH.2021.12.104.8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공주에서 발견된 벽돌에 관한 연구사 검토를 바탕으로, 宋山里古墳群에서 발견된 벽돌 명문의 기재 의미를 벽돌의 제작과정이나 벽돌무덤의 축조라는 관점에서 파악해 보았다.
Ⅱ장에서는 關野貞와 輕部慈恩 등 초기 연구자들이 공주 출토 벽돌을 처음에는 낙랑 계통이라고 했다가 송산리 6호분 발견 이후 남조 양나라 계통으로 견해를 바꾸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그러한 견해 수정에는 송산리 6호분에서 발견된 각서 명문전의 ‘梁’이라는 글자를 중국 양나라로 해석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Ⅲ장에서는 公州와 樂浪, 南京 출토 벽돌을 비교하여 그 문양이나 제작과정, 사용 방법 등의 차이를 비교하였다. 남조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공주 출토 벽돌은 낙랑 벽돌과 형태적으로 유사하지만 제작 공정상 차이가 있고, 특히 그것이 사용될 위치를 사전에 고려하여 문양과 문자를 세분하여 제작할 만큼 매우 체계적으로 제작했음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공주출토 벽돌은 남조 벽돌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축조하기 전부터 나중에 쌓게 될 묘실의 형태나 크기, 사용위치를 구별하여 제작하였고, 각 벽돌의 문양이나 문자는 다른 벽돌과 쉽게 구분하기 위한 일종의 ‘부호’와 같은 것이었음을 재확인하였다.
Ⅳ장에서는 송산리 6호분과 무령왕릉 출토 각서 명문전을 새롭게 해석해 보았다. 먼저 송산리 6호분의 ‘梁宣以爲師矣’명 벽돌에 보이는 ‘梁宣’을 ‘양나라 사람 선’으로 해석하지 않고, ‘양선’ 자체를 인명으로 보아 ‘梁宣이 師였다’로 해석해 보았다. 이때의 師는 ‘벽사’나 ‘博士’처럼 벽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기술계 관료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또 무령왕릉의 ‘⊏⊐士壬辰年作’에 대해서도 ‘士’를 인명의 일부로 보고 ‘아무개[⊏⊐士]가 壬辰年(512)에 만들다’로 해석하였다. 송산리 6호분이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각서 명문전은 벽돌을 제작한 공인의 이름을 밝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일종의 문서와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국문 초록
I. 머리말
II. 웅진기 벽돌에 관한 초기의 연구
III. 벽돌의 제작 기법과 명문전 문자의 의미
IV. 송산리 6호분과 무령왕릉 각서 명문전의 해석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2-911-000144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