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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백승충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21집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179 - 229 (51page)
DOI
10.52271/PKHS.2021.12.12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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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羅 사건’은 왜 왕권의 일라 ‘소환’과 백제의 반대, 귀국 후 일라의 반백제 활동과 죽음, 이후 이장과 범인에 대한 사후 조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친백제 세력인 物部氏 관할의 築紫 지역을 매개로 한 백제와 왜 왕권의 교섭 재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즉 일라의 귀국과 죽음은 종래 백제와 왜 왕권의 대외관계를 견인하였던바 광의의 왜 출신 백제 관인의 역할이 관산성 전투와 가야 멸망 이후 완전히 끝나고, 왜 왕권의 대외 정책의 방향이 다변화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일라의 백제 파견에 앞서 阿利斯等과 그의 子 일라 등은 卓淳國이 신라에 병합되자 渡倭하였다. 아리사등 일족의 도왜에는 물부씨에 앞서 당시 왜 왕권의 최고 귀족이자 축자 지역을 관장하고 있던 친백제 세력인 大伴大連金村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대반대련금촌은 백제에의 임나 4현 및 기문‧대사 지역의 ‘할양’을 주도하였는데, 그 연장선에서 낙동강 하류의 남부가야 3국 가운데 포함된 친백제 가야국인 탁순국과 유대관계가 깊었다.
아리사등 도왜 직후 자 일라는 대반대련금촌에 의해 혼자 백제에 파견되었다. 파견 목적은 낙동강 하류를 장악하여 제해권을 확보한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백제와 왜 왕권의 우호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유지하는 차원이었다. 일라는 백제에서 ‘韓婦’와 혼인하고, ‘達率(2위)’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일라는 전형적인 ‘왜계백제관료’와는 차이가 있는데, 『일본서기』에서는 도왜한 아리사등 일족을 倭人으로 간주하여 백제 출신인 일라의 부인을 ‘한부’로 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 왕권은 백제에 머물고 있던 일라를 귀국시키기 위해 두 번에 걸쳐 ‘紀國造押勝’ 등을 파견한 끝에 어렵게 성사시켰다. 백제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라의 ‘소환’은 蘇我氏가 주도하였는데, 吉備氏 및 木氏의 후예인 紀氏 등 전통적으로 한반도와의 대외교섭에 능했던 실무자 집단을 활용하였다. 두 번째로 백제에 파견된 ‘吉備海部直羽嶋’ 등은 ‘한부’를 통해 비밀리에 일라와 접촉하였는데, 귀국 이후의 반백제 활동에 대한 논의 과정이었다.
왜 왕권은 일라 ‘소환’ 목적을 ‘임나 부흥’에 두고 있다. 그러나 ‘임나 멸망’ 이후 비록 그 의미가 사라졌지만, 실제는 ‘임나 부흥’ 인식을 공유하고 있던 백제와의 관계를 재고하는데 있었다. 반면 백제는 축자 지역을 관장하고 있던 물부씨와 함께 축자에의 新國 건설을 추진하였다. 이것은 신라에 빼앗긴 제해권을 되찾고, 蘇我氏와 阿倍氏 등이 주도한바 ‘任那의 調’를 매개로 한 신라와의 외교 교섭과 고구려와의 통교 등 왜 왕권의 다변화된 외교를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소아씨의 왜 왕권은 이를 간파하고 일라의 ‘소환’을 서둘러 성사시켰고, 귀국한 일라는 왜 왕권에 충성을 맹세하고 ‘백제의 신국 건설 계획’을 폭로하는 등 반백제 활동을 전개하여 백제와 물부씨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즉 일라가 귀국하여 반백제 활동을 전개하고 소아씨 주도의 다변외교에 가담한 것은, 왜 왕권의 축자 지역 지배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상징적이지만, 왜 왕권은 일라의 ‘소환’과 귀국 이후 그의 반백제 활동을 통해 백제와의 외교관계를 재정립하고, 대 신라 외교관계를 확립하는 등 다변외교의 장애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였다. 또한 이를 계기로 물부씨의 축자에 대한 영향력은 약화되고 대신 소아씨가 주도한 왜 왕권이 지방세력에 대한 통제의 일환으로 축자 지역에 대한 직접 지배를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일라 사건’은 이같은 정황을 최종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阿利斯等의 渡倭와 大伴大連金村
Ⅲ. 日羅, 大伴大連金村과 백제의 관계
Ⅳ. 日羅의 귀국과 반백제 활동
Ⅴ. 敏達代(572∼585)의 대외관계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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