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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석원 (천주교 수원교구 유지재단 소속 수원교회사연구소)
저널정보
수원교회사연구소 교회사학 교회사학 제13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53 - 100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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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791년부터 1880년까지 진산(금산) 천주교 신자의 거주지와 이동 경로, 이동 지역을 정리한 것이다. 진산(금산) 지역 천주교 신자들의 거주지는 일부 지역에 집중해 있었다. 신변 안전과 신앙생활을 위해 진산 지역에서는 진산면과 복수면, 특히 대전이나 논산 벌곡면 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산골 지역에 신앙공동체가 자리 잡게 되었고, 금산 지역에서도 완주군이나 진안군에 가까운 남이면과 남일면 지역에 신자가 거주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입지 조건에 자리 잡은 진산(금산) 지역 신앙공동체는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의 신앙공동체와 교류하거나 신자들의 이주가 잦았다. 특히 박해로 생활 터전이 파괴되거나 체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시기에는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산(금산) 출신 신자들의 이주 경로를 살펴보면, 충청도의 내포 지역과 인근의 연산‧은진[현재 논산] 지역에서 주로 진산(금산) 지역으로 이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충청도(내포) 지역이 한국천주교 초창기부터 많은 신자들이 거주했고 박해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경상도 지역 신자도 진산 지역이 거주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이주를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산(금산)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경우에는 인접 지역[연산, 진잠, 고산]과 함께 좀 더 거리가 먼 공주, 서천‧남포, 광주 지역도 이주 대상지가 되었다. 여성 신자들은 결혼을 통해 타지로 이주했는데, 진산(금산) 지역 신자들은 고산, 공주 지역 신자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1791년 진산사건 이후 1801년, 1827년, 1839년, 1866년 박해 등 계속된 시련 속에서도 진산(금산) 지역 신자들은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 가새벌, 문바우, 진밭들 공소를 세웠다. 이러한 진산(금산) 지역 신앙공동체는 개항기 이후 본격적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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