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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석원 (천주교 수원교구 유지재단 소속 수원교회사연구소)
저널정보
수원교회사연구소 교회사학 교회사학 제14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5 - 50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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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잠현은 작은 지역이었으나 양반사족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조세 부담을 지지 않아 일반 민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산으로 둘러싸인 진잠 지역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접경으로 북쪽으로 공주, 동남쪽으로 진산, 서남쪽으로 연산과 접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지리적 배경은 천주교가 상류층이나 중심지역보다는 일반 민들과 산간 경계 지역에 전파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1791년 진산사건을 계기로 진산, 금산, 고산, 연산 지역에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김유산이 진잠 산막동에 거주하면서 1790년대 후반 진잠지역에 천주교가 전파되었다. 이후 진잠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다가 1836년 이전부터 신자들이 진잠 장안동 일대에 거주했던 것이 확인된다. 특히 한재권은 1840년대 후반~1850년대 전반 사이에 진잠의 공소 회장으로 활동했다. 1866년 박해 때는 진잠 바랑골과 앞재에 살던 이 바오로, 강순지, 전자연, 김 스타니슬라오가 공주로 잡혀가 순교했다. 1878년에도 진잠 오리울에 살던 장정선[장희철]이 다른 지역 신자들과 함께 잡혀 서울에서 순교했다. 자료에 나타난 진잠 지역 신자 거주지는 현재 대전 서구 장안동과 오동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진산, 서쪽으로는 연산 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산골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인근 지역(진산, 금산, 연산, 고산)으로 이주하기 쉽고 타인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산골 경계지역이 신자들에게는 알맞은 생활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진잠으로 이주해온 신자들 대부분 충청도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었는데, 내포 지역에서 박해를 피하고 신앙생활을 더 잘 하기 위해 내륙 산골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반면 진잠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에는 현재 완주군 북부의 산간 지역으로 옮겨갔다. 이는 산골에 터전을 잡은 신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할 때도 산길을 따라 이동했고, 다른 신자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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