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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재윤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55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9 - 6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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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사비 천도의 결정 시기와 그 배경을 살펴보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고고학적 자료와 문헌적 정황을 상호 비교하여 구체적인 시기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웅진을 도읍지로 결정할 때 교통로의 결절점이라는 점, 정치적 고려, 그리고 도읍으로서 기본적인 입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방어적 기능이었다. 때문에 정국이 안정되자 수도로서의 기능이 부각되며 웅진 지역이 갖는 한계점이 노정되었다. 생산기반 시설의 부재와 지역의 협소함과 잇달은 홍수 피해는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성왕대 추진설은 근거가 미약하고, 추진할 만한 세력이 부재한 것을 볼 때 추진이라기보다는 관심과 구상 정도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무령왕 때에는 제방의 축조와 노동력 확보를 통해 사비 지역의 저습지 개발이 이루어졌다. 정동리와 능산리 건물지 등 공방터에서 활발한 생산 활동도 하였다. 이를 보면 무령왕 때 사비 지역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이곳이 생산 기지 역할을 하였음은 확인된다. 하지만 무령왕대 추진설은개발에 그쳤을 뿐 실제 사비 천도가 결정되고 추진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사비 천도가 결정된시기라 할 수 없다. 천도가 결정되면 왕도 기반 시설을 구축해야 되기 때문에 부소산성과 나성의 축조 시기는 이를규명하는 데 유효하다. 이에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대통’명 기와, 나성에서 확인된 유구와 유물을통해 축조시기를 밝혀보려 하였지만 여전이 논란이 되고 있다. 다만 삼족기와 연대 측정을 통해초축 시기가 웅진 말기임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다. 보다 구체적인 시기를 살펴보면 성왕 4년(526) 웅진성의 수즙은 최소한 이 무렵까지 사비 천도가 결정되지 않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사지의 건립은 최첨단 불교문화 시설의 축조라는 점에서 웅진에 대한 보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왕은 사비 천도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민심 수습 차원에서 대통사지를 웅진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대통사지의 건립 이후 사비 천도를 결정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비 천도는 웅진 정도의 한계점을 보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사비 지역의 개발과 방어망의 구축은 천도의 장점과 단점을 보완한 조치였다. 사씨와 목씨 등 지배층의 지지, 한결 가까워진바닷길, 드넓은 공간과 생산기반 시설의 구축 등을 통해서 대세론으로 확정된 것이다. 특히 지배층과의 소통을 위해 남부여로 나라 이름 개칭하고, 대통사지의 건립을 통한 웅진 지역에 대한 배려도 사비 천도가 무난하게 단행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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