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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성은 (덕성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51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55 - 8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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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963년 연가 7년명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된 이래 지난 반세기 동안 다각적으로 논의되었던 편년, 명문해석, 양식적 특징 등에 관한 연구성과를 재검토하고 새로운 자료들을 이용하여 연가명 불상과 관련된 기존논의의 모호한 점을 밝혀 보고자 하였다. 먼저, 중국에서 새롭게 출토된 남북조시대 불상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지금까지 제기되었던 여러 편년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진 479년설과 539년설 편년의 개연성을 검토하였다. 연가명 불상에는 중국 南朝 불상과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 북위 불교조각의 여러 요소가 다양하게 혼재되어 ‘고구려 불상’ 특유의 양식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되는데 相好, 착의형식, 수인, 옷주름 표현 등, 각각의 요소를 개별적으로 살펴본 결과, 불상의 조성시기는 520년 이전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것으로 사료되어 명문에 새겨진 ‘延嘉 7년 己未’는 539년으로 편년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해는 安原王 10년으로 그가 재위 3년(533)이 되는 해에 자신의 아들 平成을 태자로 세우고 이를 국가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延嘉’를 연호로 제정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연가명 불상과 관련된 여러 문제 가운데 연가명 불상의 출토지가 절터가 아닌 점, 舟形擧身光背가 앞으로 휘어져있고 수평으로 파손된 점, 석판아래 조성된 석실에서 발견된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이 상은 광배가 파손된 뒤에 폐기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광배가 펴진 상태라면 고구려척(35.5)으로 반 척 정도가 되는 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樂良東寺의 천불조성 불사에 일정하게 정해진 반 척 크기의 불상이 주조되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천불이 조성되었던 낙양동사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동강 상류의 청암리사지와 상오리사지를 꼽을 수 있는데, 평양성이었던 청암리토성의 동쪽에 위치했던 청암리사지는 ‘금강사지’로 알려져 있으므로 ‘동사’가 ‘금강사’의 별칭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여기서 동남쪽으로 2km 떨어진 상오리사지에서 ‘동’자명 印刻瓦가 출토된 점에서 이 사지가 東寺일 가능성 또한 생각할 수 있다. 연가명 불상의 존명인 ‘인현의불’은 『현겁경』에서 언급된 현겁천불 가운데 제 29번째 불상이라는 것이 이미 논의된 바 있는데, 이 경전은 오호십육시대부터 널리 유행하였고 관불수행과 천불조성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어 낙양동사에서 천불 조성불사를 주도했던 승연과 그의 사도 40인은 『현겁경』을 소의경전으로 관불수행과 육바라밀을 통한 실천적 대승불교 신앙을 지향했던 불교도들이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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