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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정민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05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79 - 10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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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의 가문은 高祖 최근이 군산에 이주한 이래, 증조와 조부 등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이후 최호의 아버지 최한정이 무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진출하며 전라도 군산 지역에서 사족의 위상을 강화하였다. 특히, 최한정은 조산보 만호로 근무하던 1554년에 골간올적합의 침입으로부터 조산보를 방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늦은 나이에 출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승진할 수 있었다. 최호 역시 무관의 길을 걸었다. 그는 1574년의 무과에 급제한 후, 1576년에 무과 중시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중앙 관직을 거쳐 1580년에 강계의 추파 만호로 임명되었다. 이후 최호는 1580년대 초반에 종성 방원보의 만호로 재직 중에 ‘니탕개의 난’에서 활약하며 3자품을 뛰어 넘어 승진할 수 있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임진왜란 당시에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남병사)로 임명되었다. 최호는 남병사 재임할 때 여진인의 침입을 막지 못해 처벌 받을 위협에 처하였지만, 가을파지보에 開市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이 때문에 여진인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켜 침입을 방지하였고, 후대에 함경남도에 적의 침입이 없었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로 개시는 성공적이었다. 이후 그는 충청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여 사후에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최호는 신립, 이순신과 같이 동시대 명장의 반열에 오른 장수들 보다 인지도가 낮지만,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조선을 지켰던 수많은 무장 중 한명이다. 본고를 통해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최호와 같은 무장이 조선 중기 대여진 관계 안에서 어떠한 활약을 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호라는 인물을 통해 당대 여진과의 전투 과정 등을 풍부하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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